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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칼럼] 특별감찰반은 없애는 것이 답이다

입력 2019-01-08 04:10:01


권력형 범죄 예방과 공직자 통제 기능 있는 특감반은 법률 아닌 청와대 편의적 조직
복종 노리는 은밀한 공포감 조성은 권력이 애용하는 기술… 민주·공화주의와 맞지 않아


태양을 등 뒤에 두고 무법자가 나타난다. 적이 나타나자 총알이 빗발치듯 쏟아진다. 그러나 먼저 총 쏜 이들이 오히려 쓰러지고 무법자는 뿌연 총연 속에 석양 속으로 사라진다. 옛날에 봤던 ‘석양의 무법자’ 한 장면이다. 특별감찰반 문제를 다룬 국회 운영위 모습이 딱 그랬다. 야당이 난사를 했지만 임종석 비서실장과 조국 수석은 유유자적한 모습이었다. 무수한 슛을 날리고 한 골도 못 넣은 축구팀처럼 야당 쪽에는 초조함이 묻어났다.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 새로운 정보도, 움찔하게 할 논리도 부족했다.

그렇다고 이 사안이 여권의 프레임대로 ‘한 미꾸라지의 자작극’으로 끝날 일은 아니다. 사찰 문제로 실형을 받은 김기춘 실장, 조윤선 수석, 우병우 수석 등도 지시나 보고를 시인한 적이 없다. 문건과 아랫사람들의 진술이 인정돼 실형을 받았을 뿐이다. 워런 버핏의 말처럼 물이 빠져봐야 누가 수영복을 벗었는지 알 수 있다. 진실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아직도 화약은 곳곳에 있다.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이 김태우 수사관의 비위 정보를 당사자에게 알려줬다는 사실은 그 행위도 문제지만, 특감반의 보고체계가 긴밀히 작동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김태우 외 요원들의 보고 가운데 문제 될 일은 하나도 없었나? 어떤 목적으로 첩보를 수집했고, 어떻게 활용했나? 궁금증은 꼬리를 문다. 시퍼렇게 살아 있는 권력 아래서 이에 대한 답변을 바로 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지 모른다.

그보다는 좀 더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청와대에 특감반을 두고 감찰을 하는 것이 온당한가 하는 것이다. 청와대 특감반은 노무현정부에서 만들어져 두 보수 정권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악명 높았던 ‘사직동팀’이 없어지면서 그 대체물로 생겼다는 것이 정설이다. 탄생 이유가 무엇이든 이 청와대 특감반은 ‘통치의 필요’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어떤 필요인가.

청와대 밥을 먹어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특감반의 핵심 기능은 두 가지다. 하나는 ‘권력형 사고를 사전 방지하기 위한 촉수의 기능’이다. 과거 대통령 친인척이 늘 ‘폭탄’이었다. 그래서 친인척 관리는 중요했다. 하지만 특감반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공직사회 전체에서 일어나는 비리 등을 파악해 대응하는 기능으로 확장된다. 둘째는 공무원들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고 권력에 대한 두려움을 갖도록 만드는 ‘통제의 기능’이다. 둘 다 원활한 통치를 위해 필요한 일로 여겨진다.

그러나 필요하다고 해서 정당한 것은 아니다. 필요성과 정당성은 과목이 다르다. 민주국가 중에서 대통령실에 이런 종류의 감찰반을 두고 있는 나라는 없다. 그것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의 가장 중요한 가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 현대적 민주공화국의 가장 중요한 정신은 권력의 자의적 남용을 막는 것이다. 그것이 공화주의의 바탕이다.

그 자의적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해 ‘법치’가 필수적 조건이 되고, 법에 따른 권한의 배분을 통해 견제와 균형의 원칙이 정립되는 것이다. 청와대 특감반은 법률에 의한 조직이 아니다. 대통령 비서실 직제에 의한 일종의 편의적 조직이다. 그런데 이 조직의 활동 범위는 정부와 전 공공기관, 그리고 ‘대통령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자’와 같은 포괄적 대상을 향하고 있다. 사실 이런 감찰을 할 수 있게 헌법과 법률에 의해 보장하고 있는 기관이 버젓이 있다. 감사원이다.

비리 정보 수집과 수사는 검찰, 경찰도 할 수 있다. 법률적 근거가 희박한데도 특감반은 마치 ‘마패 없는 암행어사’로 군림한다. 청와대에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상위의 권력기관처럼 비치게 된다. 청와대 말대로 급수에 맞지 않는 일개 수사관의 요청으로 고위 공직자들이 쩔쩔매고 자료를 만들지 않는가.

더 심각한 것은 공공연한 인권 침해 요소다. 민간인 사찰이 없었더라도 공직자에 대한 감찰도 지나치면 다 문제가 된다. 공무원들에게 휴대폰을 제출받아 탈탈 터는 관행은 이전 정부보다 더 심해진 것이다. 한 의원이 압수수색영장 없이 휴대폰 제출받는 일을 지적하자 ‘동의서’를 썼으니 문제없다고 조국 수석이 답변하는 걸 보면서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인권과 형법을 가르치는 교수의 입에서 나올 얘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수사권 없는 특감반이 동의를 받는다고 불법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거니와 닥칠 불이익을 뻔히 알면서 어떤 공무원이 휴대폰을 안 낼 수 있을까. 동의의 형식을 빌린 불법이요 강압일 뿐이다.

권력이 정보의 힘에 의존하는 것은 본질적 속성이다. 청와대가 ‘지난여름 네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알고 있다’는 눈짓만 해도 권력은 복종이라는 대가를 얻을 수 있다. 은밀한 공포감은 동서고금의 권력이 애용한 기술이다. 그러나 이런 권력이 개인을 겨냥하는 잔인함을 걷어내기 위해 민주주의가 있고 공화주의가 있는 것이다. 그 원리에 비추어보면 특별감찰반은 없애는 것이 답이다. 그게 적폐청산이다.

박형준 동아대 교수 (전 국회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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