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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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끝을 생각하다

입력 2019-01-09 00:10:02


2019년 새해를 맞으며 생각해봤다. 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예상치 못한 부고 기사를 쓰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2018년 마지막 날 전해진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임세원 교수의 마지막 모습이 큰 계기가 됐다. 도와주려던 사람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당하던 순간에 두 차례나 뒤를 돌아보며 다른 이의 안전을 챙겼던 고인의 마지막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이 평생 소명에 충실하고 타인을 사랑했던 그의 삶을 대변하는 듯했다.

어떤 결말을 염두에 두는지에 따라 글의 전개가 달라지듯 삶도 그러할 것이다. ‘인생, 전도서를 읽다’에서 저자 데이비드 깁슨은 이런 말을 들려준다. “죽음은 설교자의 옷을 입고서, 삶은 유한하고 우리가 삶을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유한하니 우리는 스스로 인식하는 것보다 그들을 더 깊이 사랑하고 그들을 제대로 사랑해야 한다고 말이다.”

곰곰이 끝을 생각하니 남는 것은 사랑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눈 시간, 그 시간에 주고받은 마음, 그 따뜻한 기억이 내 안에서 끊임없이 길어 올리는 힘. 그런 것들이 내 삶의 기쁨이자 의미로 남겠구나 싶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해야 할 일은 있는 힘껏 사랑하며 사는 것일 텐데, 문제는 말처럼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첫 번째 고비는 한집에 같이 사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데서부터 찾아온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시’자가 들어가는 관계까지. 가족이니 사랑해야 한다는, ‘당위’가 앞서는 관계일수록 진실되게 사랑하기가 어렵다.

집 밖에서도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직장이나 학교 등 사회에서 만난 사람 중 나에게 친절한 사람,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그래도 사랑해볼 수 있다. 문제는 그들이 나와 생각이, 취향이, 입장이, 처지가 다른 사람들일 때 일어난다. 당장 그 사람의 정치적 입장부터 걸린다. 홍준표의 TV홍카콜라를 보는 직장 상사가 누군가에겐 참기 힘든 존재가 되고, 다른 누군가는 유시민의 알릴레오를 구독하는 후배가 눈엣가시같이 여겨질지 모를 일이다. 사는 동네, 타는 차, 연봉까지 얽히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마음은 있는 힘껏 사랑하고 싶지만,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

미국의 괴짜 변호사 밥 고프는 ‘모두를, 언제나’라는 책을 썼다. 그는 30여년간 변호사로 일하다 그만두고 분쟁국 아이들을 지원하는 단체 ‘러브더즈’를 설립한 사람이다. 우간다에서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주술사를 상대로 소송해서 사상 처음 유죄 판결을 받아내 세상을 놀래켰다. 더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다. 교도소에 갇힌 주술사를 찾아가 복음을 전하고 마침내 그 사람과 친구가 된 것이다. 어떻게 가능할까.

그도 처음엔 사랑하기 쉬운 사람들을 사랑하며 스스로 사랑을 베푸는 재주가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하지만 책 원고가 담긴 노트북과 지갑을 털리는 등 몇몇 사건을 겪으며 자신과 다르고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은 사랑하지 못하고 피해왔음을 깨달았다. 그는 “하나님의 가르침은 그저 사랑을 주고받는 데서 끝나지 않고 우리에게 ‘사랑이 되라’고 하신다”며 “온몸으로 사랑을 베푸는 사람은 타인에게서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그들이 눈살 찌푸려지는 행동을 할 때도 그렇다”고 적었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준 가르침은 곧 ‘모두를, 언제나’ 사랑하라는 것으로 요약된다고 했다.

실제 예수는 ‘가장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며 마태복음 25장에서 사랑의 구체적인 행위를 나열했다. ‘주릴 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고, 헐벗었을 때 옷 입히고, 병들고 옥에 갇혔을 때 돌보는 것’이다. 미국 월드비전은 이 말씀대로 하루에 한 가지씩 실천하며 살아보는 ‘마태복음 25장 도전(The Matthew 25 Challenge)’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개인과 가족, 교회 단위로 많은 이들이 참여해 사랑을 실천한다고 한다. 새해 들어 끝을 생각하다, 덜컥 이 프로그램에 도전해보겠다고 다짐하며 신청 이메일을 보냈다.

김나래 종교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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