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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김영석] FA 뒤에 숨겨진 거액 옵션

입력 2019-01-10 04:05:01


삼성 라이온즈 차우찬은 2015년 12월 LG 트윈스와 FA 계약을 맺었다. 계약금 55억원, 연봉 10억원 등 총액 95억원이 이적 조건이었다. 그런데 이후 삼성 측은 “100억원과 플러스알파를 제시했다”고 공개했다. 차우찬은 삼성이 제시한 100억원이 넘는 금액 대신 LG의 95억원을 선택한 형국이다. 롯데 자이언츠 장원준은 2014년 11월 두산 베어스와 84억원의 FA 계약을 체결했다. 앞서 롯데는 장원준에게 88억원을 제시했었다.

이뿐 아니다. 2017년 11월 롯데 강민호는 80억원의 FA 계약을 맺고 삼성 이적을 발표했다. 이후 롯데가 공개한 제시액은 80억원이었다. 롯데 80억원 대신 똑같은 금액인 삼성의 80억원을 택한 것이다. KIA 타이거즈 양현종은 1년 계약을 통해 2017년 총액 22억5000만원을 받기로 했다. 양현종은 그해 20승을 거두며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했다. 그런데 2018년 연봉은 23억원이었다. 20승 투수의 연봉 인상액이 5000만원이었다.

이처럼 야구팬의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 계약들은 수두룩하다. 문제는 계약서 이면에 숨어 있는 옵션이다. 최근 들어 거액 FA 선수들의 계약 발표 때 옵션을 공개하는 경우는 드물다. 매년 1월 KBO에 제출해온 계약서에는 옵션 조항을 공개할 의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구단과 선수들은 이를 악용했다. 옵션을 통해 몸값을 보전 받았다. 세금 대납, 주택자금 또는 광고 등을 통해서다. 옵션금액이 발표금액의 30% 안팎이라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또 계약금액을 줄여 발표함으로써 거액 몸값에 대한 비난 여론도 피할 수 있는 부수 효과도 있다. 그러면서 FA 계약 발표액에 대한 신뢰성은 상실된 지 이미 오래다.

FA 제도 도입 초기에는 옵션 내용까지 공개했다. 1999년 겨울 KBO리그 1호 FA였던 한화 이글스 송진우는 최대 7억원의 FA 계약을 맺었다. 계약금 2억5000만원, 연봉 1억3500만원이 보장됐다. 그리고 10승 이상을 올리면 추가로 매년 1500만원씩 받기로 했다. 2001년 11월 LG 양준혁은 23억2000만원의 FA 계약을 맺고 삼성으로 이적했다. 계약금 10억원, 매년 연봉 3억3000만원이 보장금액이었다. 여기에 플러스 옵션과 마이너스 옵션이 있었다. 100경기 이상 출장, 타율 0.305 이상, 80타점 이상 때는 1억원씩 추가 보너스를 받기로 했다. 반대로 규정타석에 미달할 경우 매년 5000만원씩 반납하고, 90경기 미만 출장과 타율 0.270 미만, 60타점 미만일 때는 1억원씩 삭감키로 했다.

구단들은 FA뿐만 아니라 외국인 선수와의 계약 발표 때도 옵션 조항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올해도 10개 구단이 30명의 외국인 선수와 재계약 또는 영입 계약을 맺었지만 옵션 내용을 공개한 구단은 한 군데도 없었다. 심지어 상당수 구단은 계약금과 연봉, 옵션을 총액이라는 표현으로 뭉뚱그려 발표했다. 신규 영입 외국인 선수의 몸값을 100만 달러로 제한한 구단과 KBO다. 옵션 내용을 알 수 없다면 이를 지켰는지 알 수 없다. 결국 옵션은 야구팬들은 모르는 구단 내부인만의 비밀 조항으로 변질돼 버렸다.

KBO는 올해부터 모든 선수의 연봉 계약에 포함된 옵션 조항을 신고토록 했다. 그러나 KBO는 조사 권한이 없다. 구단과 선수들이 다양한 편법을 동원해 숨긴다면 알아낼 방법이 없는 구조다. 모든 계약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투명성이다. 이제는 모든 계약 내용을 공개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때가 됐다.

또 외부기관을 통해서라도 계약서 내용을 검증하는 절차도 갖추는 게 필요하다. 옵션을 통해 실제 계약금액을 숨기는 관행을 깨지 못한다면 야구팬들의 믿음은 점점 사라질 수밖에 없다. 믿음의 토대가 무너질 경우 800만 관중 시대가 순식간에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할 수 있음을 구단과 KBO 모두 잊지 말아야 한다.

김영석 스포츠레저부 선임기자 ys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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