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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래 칼럼] 한·일 불신 자초했거나 조장했거나

입력 2019-01-28 04:05:01


갈등 증폭시켜 嫌韓과 한반도 비하 부추기는 건 과거 한국의 독재정권들을 연상시켜
文 정부 사람들은 대체로 ‘일본 폄하론’에 빠진 ‘일본 및 한·일관계 문외한들’이 아닐까 싶다


한·일 관계가 꽉 막혀 있다. 위안부, 징용자, 레이더 조사(照射), 위협비행 문제 등 갈수록 태산이다. 어렵게 나온 해법도 임시변통 억지춘향 앞세우듯 하다 보니 다시 미궁으로 빠진다. 그 와중에 신뢰는 무너지고 상대에 대한 악감정만 커진다.

양국 간 갈등은 과거사를 둘러싼 대립처럼 보이지만 불신이 원인이다. 다만 불신의 내용이 다를 뿐이다. 양국 관계를 제대로 갈파하지 못한 탓에 자초한 불신도 있고, 의도적으로 불신을 조장하려는 경우도 있다. 문재인정부가 전자라면 후자는 일본의 아베 신조 정부다.

후자부터 우선 살펴보자. 일본에서는 2000년 전후부터 혐한(嫌韓)이란 말이 나왔다. 반한(反韓)이나 재일한국·조선인 차별 등은 이전부터 있었지만 ‘혐오’라는 말을 앞세워 한국·한국인을 비하하고 배척하는 태도는 처음이다. 이는 중국에 대해 반중(反中)을 거론하기는 해도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혐중(嫌中)’이란 말이 거의 안 쓰이는 것과 대조된다.

혐한의 등장 배경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으나 2002년 한일월드컵 공동 주최 이후 대등해진 양국 관계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일부 일본인들의 심리적 동요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만화가 야마노 샤린이 쓴 ‘만화 혐한류’(2005)가 본격적으로 혐한에 불을 지폈다. ‘만화 혐한류(嫌韓流)’는 인터넷 서점 아마존재팬에서 그해 판매 1위를 차지할 만큼 주목을 끌었다. 이 흐름은 2011년까지 4권의 시리즈를 비롯해 2015년 ‘만화 대(大)혐한류’ 출간 등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야마노는 ‘만화 혐중류’도 내놨지만 세간의 반응은 크지 않았다. 역시 급격한 발전을 보이고 있는 한국에 대한 일부 일본인들의 편치 않은 심사가 반영되고 있는 듯하다. 패권국가로 떠오르는 중국에 대해서는 이성적으로 경계론을 펴면서 유독 한국의 부상에 대해서는 감정적으로 대응하려는 태도가 엿보인다.

2012년 12월 재집권한 아베 정권은 당시의 일본 사회 분위기에 슬그머니 편승했다. 한반도 위기감을 강조하는 한편 헌법 개정을 위한 장기집권에 적극 매달렸다. 이는 혐한 붐이 2013~15년 가장 고조됐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일본인 한국 입국자 수는 2012년 348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급락하기 시작했고 2015년 180만명으로 반토막이 났다.

아베 총리는 그간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누구보다 강하게 반발한 데 이어 요즈음 한국에 대해서는 위안부 재단 해산, 대법원 징용자 개인배상 판결 등을 들어 노골적으로 한국을 비난한다. 급기야 아베 정부는 레이더 조사 문제를 둘러싼 양국 갈등과 관련해 수습을 꾀하기보다 실체를 침소봉대하고 일본 해상초계기의 위협비행을 비호·조장하고 있다.

원만하게 수습하기보다 갈등을 증폭시켜 혐한과 한반도 비하를 부추기는 태도는 과거 한국의 독재정권들을 연상시킨다. 반일이란 공통의 당위목표를 내세워 민심을 묶어내고 정부로 향하는 불만을 그쪽으로 돌리려는 술수다. 낡은 수법으로 양국 관계의 불신을 의도적으로 조장하려 한다. 일본 시민사회가 이를 간파하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반면 전자의 문제점은 한마디로 ‘일본 및 한·일 관계 문외한’이라는 데 있다. 문 정부 사람들은 대체로 ‘일본 폄하론’에 빠져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사실 일본은 정치외교적으로는 냉전이 끝남과 동시에 갈 방향을 잃고 불안감에 흔들렸고 특히 같은 시기 장기 불황에 빠지면서 경제적으로도 위축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의 세월들이다.

한국은 그 시기에 상대적으로 더 탄탄해졌다. 예컨대 일본의 유수한 전기전자 기업들을 제치는 성공도 경험했다. 원래도 일본에 대한 반감이 있었던 만큼 그 상황에서 바로 일본 폄하론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일본 활용론·중시론은 설 자리를 잃었다. 사실상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한국의 잃어버린 일본 연구 20년’ ‘일본 폄하 20년’이나 같다.

그 결과가 만용에 가까운 대일본 외교로 표출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일본의 무례한 과거사 인식은 우리가 나서서 교정시킬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과제요 일본 시민사회의 몫이다. 일본의 과거사 태도를 눈감자는 얘기가 아니다. 협력적이고 돈독한 관계 위에서 우리의 요구가 관철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는 문 정부가 대일본 투트랙 정책을 펴겠다는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협력보다 대립과 갈등을 자초하는 듯해 걱정이다.

의도적으로 불신을 키우려는 상대가 있는 상황에서 문제를 풀어내기엔 어려움이 적지 않을 터다. 그럼에도 불신의 벽을 넘지 못하면 한반도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한·일 불신 탓에 빚어질 피해는 우리 몫이 더 클 것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 무역입국 유지, 기술·제도의 경험 및 초고령사회 사례 학습 등 이 모두가 일본을 빼놓고는 이루기 어려운 의제다. 문 정부의 분발을 바란다. 제발 좀 더 지혜롭든지 겸손하든지.

조용래 대기자 jubi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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