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전체메뉴보기 검색

[가리사니-이경원] 메멘토 모리

입력 2019-02-18 04:05:01


운구차는 오래된 스타렉스, 좌석을 들어낸 공간에 나무관 둘이 나란히 누웠다. “저런 차도 운구를 하나….” 즐비한 검정 리무진 틈에서 서울시립승화원 입구로 들어서는 회색 승합차를 보곤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관이 운구 카트에 옮겨질 때 명패가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유족은 13호, 14호 대기실로 모시겠습니다.” 승화원 직원의 안내에도 발길을 옮기는 이가 없었다. 시민단체 ‘나눔과 나눔’의 자원봉사자가 조용히 관을 따라 걸었다.

서울시의 무연고 사망자 유모씨와 이모씨는 지난 11일 그렇게 화장됐다. 종로구 고시원에서 지내던 42년생 유씨는 동대문구의 한 병원에서, 경기도 광주가 마지막 주소지인 44년생 이씨는 노원구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영정사진조차 없었건만 말 그대로의 무연고자(無緣故者)는 아니었다. 유씨의 조카는 구청의 부고에 “행방불명 신고를 한 지 30년이 넘었다”고 답했다. 이씨에게는 자녀가 있었지만, 시신 인수 의향을 묻는 등기를 받고 응답하지 않았다.

둘의 화장에는 1시간이 소요됐다. “전엔 2시간 걸린 시신도 있었습니다.” 무연고 사망자의 마지막을 수년째 동행해온 부용구 ‘나눔과 나눔’ 전략사업팀장은 분골실에서 얼마간 안도했다. 유씨도 이씨도 언 몸은 아니었다. 배우자, 자녀, 부모, 조카…. 구청이 망자의 주변을 순서대로 훑는 동안, 시신은 안치실에서 냉동된다. 그 과정이 오래 걸려 6개월을 얼어 있던 시신도 있다. 그런 시신은 입관할 때 관 뚜껑이 잘 닫히지 않고, 화장이 오래 걸린다.

베이비박스에 넣어진 아기가 사망해 승화원에 온 날도 있었다. 연고는커녕 이름도 없었다. 그날 부 팀장은 아기 옷과 신발을 사서 화장로로 들어가는 관 위에 올렸다. 그렇게 애초 무연고자인 경우는 드물고, 10명 중 8명은 제적등본상 연고자가 있다. 연고자를 찾아서 무연고자가 명명되는 모순을 한탄할 시간은 없다. 서울시 위탁으로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치르는 김화준 ‘우리의전’ 의전팀장은 “시신 인수를 빨리 포기해 주면 구청도 병원도 다행”이라고 말했다.

단절의 원인엔 치정도 있고 폭력도 있다. 하지만 무시 못할 또 다른 요인은 경제다. “제가 인수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구청 연락을 받은 유족은 종종 되묻는다. 무연고 사망자가 세상에 남기는 건 의사의 사망진단서 또는 검사의 사체검안서, 그리고 하루 8만원의 안치비용이다. “나라에서 화장은 해 줍니다.” 구청 주무관이 답할 때, 수화기 너머에서 복잡한 안도감이 전해질 때도 있다 한다.

3만 달러가 국민 각자의 소득일까. 병이 깊었던 어느 가난한 이는 장제비를 걱정해 자식에게 “무연고라 하라”고 당부했다. 운구를 할 때 누군가 갑자기 달려와 엎드리거나, 먼발치에서 지켜보며 우는 때도 있다. 그런 때 김 팀장은 “술이라도 한잔 올리시라” 하는데, 대개는 그냥 돌아간다. 어느 무연고 사망자의 유품인 다이어리에는 6개의 숫자가 암호처럼 적혀 있었다. 로또 번호로구나, 깨달은 순간 부 팀장은 마음이 아렸다고 한다.

봉안함 앞에 음식을 두고 김 팀장이 견전례를 올렸다. 탁, 젓가락을 모으는 소리가 길게 울렸다. “넋은 이미 상여에 오르시어, 이제 가시면 유택이 옵니다.” 지난해 화장된 서울시의 무연고 사망자는 382명이다. 2017년보다 16명이 늘었다. 걸음마로 주위를 웃게 하고, ‘하나 둘 셋’ 하고 사랑하는 이와 사진도 찍었을 이들이었다. 382명 중 남성이 325명인데, 50, 60대가 많다. 부 팀장은 “외환위기 이후 가족에게 빚 독촉이 안 가게 하려고 노숙을 선택한 가장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무연고 사망자를 산골(유골을 뿌림)하게 한다. 스타렉스 기사가 바람 부는 유택동산에 올라와 연고 없는 한 줌 넋을 분골함에 털어 넣었다. 서울 시내 장례식장 지리를 모두 알고, 30년간 인연 없는 이들의 상여를 끌어준 이였다. “취재하러 온 기자입니다….” 그는 “무슨 말을 해요. 나는 말을 할 줄 몰라요”라며 기자를 지나쳤다. 인생이란 없던 인연이 생기는 것일까, 아니면 있던 인연이 사라지는 것일까. 말하여지지 않는 것이로구나, 싶었다.

이경원 경제부 기자 neosarim@kmib.co.kr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