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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고승욱] 택시요금 더 낼 수 있다

입력 2019-02-19 04:05:01


잘 걷지 못하는 80대 후반 노모와 병원에 가려면 아내는 혼자 큰길로 걸어간다. 전철역 앞에서 택시를 잡아 집으로 돌아온 뒤 시어머니를 태운다. 택시를 부르는 앱은 대부분 응답이 없다. 5000원 조금 넘는 요금을 받기 위해 골목 안으로 들어오는 택시를 찾기 힘들다. ‘따블’ ‘따따블’이라도 추가 요금을 낼 용의가 있지만 합법적인 방법을 모른다. 우리 부부는 평소 대중교통을 이용하다가 꼭 필요할 때는 렌터카를 쓰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몇 년째 망설이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식구가 있다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언제든 부르면 택시가 온다는 확신이 있으면 몰라도.

서울의 대중교통은 훌륭하다. 버스전용차로 덕분에 지하철이 아니어도 약속시간을 어김없이 지켜준다. 지하철과 마을버스, 시내버스, 시외버스를 넘나드는 환승시스템은 세계 어느 도시도 따라오지 못한다. 물론 잘 걷는 건강한 사람에게 그렇다. 장애인이나 환자에게 버스와 지하철은 아무리 개선해도 이용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교통약자에게는 택시와 같은 도어 투 도어 서비스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건강한 사람에게도 택시가 꼭 필요할 때가 있다. 회사 동료 대부분은 밤 12시 넘어서까지 야근하는 날에는 택시를 이용한다. 버스와 지하철이 이미 끊어진 시간이다. 편리하고 안전한 버스와 지하철에 이미 많은 세금을 투입하고 있는 만큼 대중교통 영역에서 택시의 비중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전국적으로 택시는 25만대쯤 있다. 서울에만 약 7만2000대다. 개인택시 부제를 비롯해 이것저것 따지면 서울시내에 돌아다니는 택시는 3만8000대 안팎이다. 이 숫자가 많을까. 정부는 그렇다고 판단했다. 택시산업지원법에 따라 2015년부터 감차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택시는 늘 부족하다. 하루 종일 빈 택시를 봤는데 정작 타려면 없다. 풀기 어려운 추리소설 미스터리처럼 들리지만 사실 따져보면 간단한 수요공급 법칙이다. 출퇴근 시간과 심야에는 부족하고 낮에는 남는다. 이게 전부다. 카카오 모빌리티 리포트를 보면 명확하다. 오전 8시, 오후 7시, 밤 12~1시에 택시를 부른 승객이 응답한 기사보다 2배 넘게 많다. 택시기사인들 목숨 걸고 과속하고 싶을까. 온갖 욕을 먹으며 승차거부 하고 싶을까. 낮에 돈을 못 벌었으니 아침저녁 대목 시간에 악착같이 일해야 수익을 맞출 수 있는 구조다.

수요공급의 불일치는 시장에 맡겨야 해결된다. 정부가 면허를 내준 택시가 몇 대인지, 하루에 평균 몇 명이 택시를 이용하는지를 계산해 소비자가 만족하는 수준으로 수요공급을 맞추는 건 불가능하다. 부족한 곳에만 공급을 늘리는 정책을 일관되게 펴야 한다. 예를 들어 심야 교통수단을 늘려야 한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데 승차거부 단속만 해서는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심야버스는 시민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더 늘지 않는다. 승차거부를 막기 위해 쏟는 자원의 절반만 투입해도 크게 확대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개인택시 부제를 없애자는 의견도 귀를 기울일 만하다. 출퇴근 시간에 일하고, 좀 쉬다가 퇴근시간이나 심야에 다시 나가도록 한다는 게 찬성론의 골자다. 이런저런 검토가 더 필요하겠지만 21세기에 자영업자의 영업시간을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도 마땅찮다.

얼마 전 동료들과 택시에 옵션을 넣자는 이야기를 나눴다. 과속하지 않는 조건 1000원, 난폭하게 몰지 않는 조건 1000원, 담배 냄새 안 나면 1000원, 시끄러운 ‘뽕짝’을 틀지 않으면 1000원…. 모두 원하는 조건이 충족된다면 추가 요금을 낼 용의가 있다는 데 동의했다. 지난 16일 새벽 택시요금이 오르자 곳곳에서 불만이 나온다. 택시요금이 올랐다는 이유가 다는 아니다. 차량공유를 비롯해 지금까지 제시된 서비스들을 도입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모든 문제를 정부가 처방한 한 가지 방식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고승욱 편집국 부국장 swk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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