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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마강래] ‘균형발전의 훼방꾼’ 된 예타는 억울하다

입력 2019-02-22 04:05:02


얼마 전 정부는 24조원이나 소요되는 23개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예타 면제) 사업을 발표했다. 이를 접한 후, “니 돈이면 그렇게 쓰겠니”라는 ‘국가의 사기’(우석훈)에서 읽은 문구가 떠올랐다. 24조원은 정말로 큰돈이다. 국내 모든 가구가 100만원씩 갹출해도 24조원이 안 되니 말이다.

김대중정부 때 도입된 예타 조사는 국민 세금을 허투루 쓰는 걸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다. 대규모 사업(총 사업비 500억원 이상이면서 국가 재정 지원이 300억원 이상 투입되는 사업)을 대상으로 하는 예타 조사는 혈세 낭비를 막는 소중한 제도다. 이번 논란으로 예타 제도는 전문가 영역을 넘어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되었다. 하지만 예타는 억울한 누명을 덮어썼다. 수도권 편에 서서 지방의 사업을 막는, 그래서 국토의 균형적 발전을 저해하는 걸림돌이란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기 때문이다.

예타 면제 사업을 둘러싼 대표적인 말들이다. “예타 조사는 경제적 타당성 중심이다. 지방에는 기회가 가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해서라도 균형 발전을 추진해야 한다.” “돈과 사람이 없는 지방에 수익성이 없다고 기반시설을 못 짓게 해선 안 된다.” 하지만 이건 예타를 단편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예타 조사는 경제적 타당성만을 따지지 않는다. 사업 시행 여부는 ‘정책성 분석’과 ‘지역 균형 발전 분석’ 등을 더해 종합적으로 결정한다. 건설사업의 경우 경제성(35~50%), 정책성(25~40%), 지역 균형 발전(25~35%)의 세 가지 요인이 고려되고 있다.

그러니 균형 발전을 위한다면서 예타 자체를 패싱하는 건 문제가 있다. 예타가 균형 발전의 걸림돌이 된다면 이에 맞게 제도를 손보면 되지 않겠는가. 개선책을 내놓는 대신 면제 사업을 서둘러 발표한 것에 대한 비난은 크게 두 가지다.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두고 정부가 선심성 정책을 펴고 있다는 것, 고용 쇼크에 놀란 정부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대규모 건설사업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비판의 목소리는 후자 쪽이 더 강한 듯하다. 건설업은 단기적으로 고용유발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정부는 “토목사업을 통한 경기 부양은 없다”고 약속했었다. 많은 사람이 그런 정부의 의지를 높게 샀다. 이번 면제 발표를 씁쓸해하는 건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만은 아니다. ‘균형 발전’이란 명목의 예타 면제가 정말로 지방을 위한 게 아닐 수 있다는 의구심 때문이다. 경제성이 극도로 낮은 사업이 지자체의 발목을 잡는 골칫거리로 전락한 경우를 봐오지 않았는가. 대표적으로 전남 영암군 ‘포뮬러원(F1) 경기장’과 ‘4대강 사업’이 그런 경우다. 포뮬러원 경기장의 경우 총 손실은 6000억원을 넘었다. 사업 유치를 자랑하던 전남에 경기장은 엄청난 짐이 됐다. 이명박정부에서 4대강 사업을 진행하며 만든 수변공원도 마찬가지다. 이용률이 기준 이하인 곳이 수두룩하다. 관리·운영을 위한 국비도 만만치 않지만 매년 투입되는 지자체 비용도 수백억원이다.

이런 상황에서 ‘균형 발전을 목표로 하는 예타 면제 사업을 정례화하자’는 목소리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너무나 위험한 주장이다. 정부는 이번 면제 사업이 지역 요구를 취합한 상향식 방식으로 선정되었다며 자화자찬했다. 그래서 결과는? 이때라고 생각한 지자체들은 ‘경제성이 낮고 덩치가 큰 사업들’을 서둘러 올렸고 정부는 ‘N분의 1’의 프레임으로 사업지를 선정했다. 지난 예타의 지역 균형 발전 항목에서조차 낙제점을 받은 사업이 다수 포함되었다. 이를 결정한 분들께 묻고 싶다. ‘균형 발전의 기준은 무엇이고, 사업이 가지는 균형 발전 효과는 무엇인가’ ‘나중에 면제 사업이 문제가 되면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낭비적 사업의 절차적 정당성을 문제 삼았던 정부가 예타를 면제했다. 그것도 이번에는 너무나 공공연하게, 그리고 한꺼번에 면제 사업을 쏟아냈다. 다음 정부도 ‘균형 발전’이란 이름으로 예타 패싱 카드를 사용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예타는 균형 발전을 가로막는 천덕꾸러기 훼방꾼의 이미지가 강화될 것이다. 예타 조사가 인구와 일자리 감소로 고통받는 지역에 불리하다면 조사의 항목과 방법을 손보는 게 옳다. 예타 자체를 패싱하는 건 균형 발전의 대안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지역에 부담이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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