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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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사니-정현수] 내 집 마련 실패기

입력 2019-02-25 04:05:01


최근 집을 사려고 알아봤다. 지금 세 들어 사는 동네가 마음에 들었고, 애가 크면서 집이 좁기도 했다. 가용 자산에 감당할 만큼의 대출을 받는다고 가정하고 자금 상한을 정했다. 좀 낡아도 넓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금이 그리 넉넉지 않아 포기해야 할 부분도 있었다. 걸어가긴 힘든 지하철이나, 가까이에 편의점 하나 없는 것 정도는 기꺼이 감수키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주말마다 임장을 다녔다. 그중에는 낡았지만 해가 잘 들고 넓어 마음에 드는 집이 몇 개 있었다. 괜히 넓은 집 샀다가 급할 때 팔기 어려울 거라는 주변의 걱정은 있었다. 교통과 상권 이용이 불편해 부동산 시장 하락기엔 ‘지옥을 맛보게 될 것’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부부는 ‘평생 살지 뭐’ 하고 넘겼다. 어차피 집으로 돈 벌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문제는 엉뚱한 데서 튀어나왔다. 애를 봐줄 어린이집이 발목을 잡았다. 내년이면 애가 만 3세가 되는데, 근처에는 만 3세반을 둔 어린이집이 없었다. 유치원에 보내자니 끝나는 시간이 오후 5시였다. 맞벌이인 우리 부부가 한창 일할 시간이다. 둘 중 하나가 일을 그만두거나 보모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건데, 둘 다 내키지 않았다. 그나마도 유치원 추첨에서 당첨된다는 보장도 없었다.

직장 어린이집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남의 직장(출입처)이 곧 일터인 기자는 애초부터 가질 수 없는 선택지다. 괜히 아내에게 “왜 어엿한 중견기업에 어린이집도 하나 없냐”고 해 봤더니, 여직원 비율이 5%도 안 돼 그렇다고 한다. “아빠들도 이용할 수 있지 않냐”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아내가 사장도 아니고, 여긴 한국이지 북유럽이 아니다 싶어 말았다.

처음부터 계획을 다시 짜는 수밖에 없었다. 오후 7시까지 만 3세반을 운영하는 어린이집을 먼저 찾고, 근처 집들을 다시 알아봤다. 묘하게도 조건에 맞는 집들은 그간 보던 집들보다 더 낡고 좁았는데, 하나같이 처음 생각했던 자금 상한을 한참 넘겼다. 요즘 하는 말로 ‘영혼까지 끌어모아야’ 맞출 수 있는 금액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슬슬 걱정이 됐다. 무리해서 샀는데, 집값이 갑자기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잡겠다고 열심이니 조금 더 기다리면 싼 집이 나오지 않을까. 반대로 정부 정책이 별 효과가 없어 집값이 더 오르면 영영 집을 못 사는 건 아닐까. 반쯤 미친 사람처럼 어느 날엔 집값이 왜 안 떨어지냐고 화를 내고, 다른 날엔 그러다 진짜 계속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초조해했다.

‘값이 오를만한 집을 사자’는 생각을 가진 것도 그때쯤이다. 때마침 좀 떨어진 지역에 대규모 재건축 단지 소식이 들려왔다. 원주민 분양권을 웃돈을 얹어 살 수 있었다. 이미 분양권 가격의 50%를 넘는 웃돈이 붙어 있었다. 그래도 원주민 분양권이 일반 분양권보다 싼 탓에 손해 볼 게 없었다. 근처에 GTX가 들어온다니 향후 집값도 오르리라.

바쁘게 셈을 해 보는 와중에 수화기 너머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피(프리미엄) 신고는 7000만원으로 하셔야 합니다.” 아뿔싸, 말로만 듣던 다운계약서였다. 웃돈의 55%를 양도세로 내야 하니 다운계약서 조건이 없는 물건은 거의 없다고 했다. 중개업자는 시키는 대로만 하면 절대 걸릴 일이 없다고 설득했지만 명백한 불법이라 30분 정도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였다. 그 사이 물건은 다른 매수자 손으로 넘어갔다. 30분이 부끄러웠고, 유혹에서 날 건져 준 그 경쟁자가 차라리 고마웠다.

‘주거’와 ‘투자’ 사이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듯 심적 변화를 겪은 우리 부부는 아무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자포자기 상태다. 그러면서 집에 대해 가진 사람들의 생각도 그간 우리가 겪은 저 고민들 중 어디쯤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집값이 떨어져야 한다고 기사에 써도, 또는 그 반대로 써도 누군가에게는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겠다. 또 그 큰 간극을 메우고, 모두를 만족시킬 ‘도깨비방망이’ 같은 부동산 정책은 영영 없을 거라는 점도 이제는 알겠다.

정현수 경제부 기자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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