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한국시간 12일 새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북·미 비핵화 협상 견인 방안을 논의했다. 미국은 대북 제재에 “여지를 남겨두고 싶다”며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처음으로 대북 유화 제스처를 내놓았다. 다만 미국의 이번 스탠스가 일시적인지, 아니면 지속적으로 북·미 대화에 긍정적인 입장을 유지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날 미국 워싱턴에 도착한 문 대통령은 11일 낮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오피스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취임 후 7번째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2시간여동안 단독 정상회담, 소규모 정상회담, 확대 정상회담과 업무 오찬이 잇달아 진행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북한과 관련해 많은 진전이 있었고,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잘 알게 됐고, 존경한다. 앞으로 좋은 일이 있길 기대한다. 김 위원장과 북한 주민들에게 안부를 전한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며 “다음 회의(3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잠재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문 대통령은 전투기나 미사일 등 미국의 여러 군사장비 구매를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만나면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대폭 완화됐다”며 “하노이 회담도 결코 실망할 일이 아니라 더 큰 합의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한반도의 변화는 전적으로 탁월한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 덕분”이라고 사의를 표했다.

단독 회담엔 문 대통령 내외가 함께 참석했다. 우리 대통령 내외가 오벌오피스에 초대받은 것은 처음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특별한 우호관계를 가진 국가의 정상을 맞는 트럼프 대통령의 예의 표시”라고 설명했다. 이어진 소규모 정상회담에서는 향후 대북 공조 방안을 심도있게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측에서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조윤제 주미대사가 참석했고 미국 측에서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보좌관,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에 앞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 폼페이오 장관, 볼턴 보좌관을 별도로 만나 북·미 협상 진전 방안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문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의 동력을 유지해 조기에 북·미 대화가 재개되는 것이 긴요하다”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도 “북·미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미국은 긍정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며 “북·미 대화 재개에 희망적”이라고 화답했다.

문 대통령은 폼페이오 장관과 볼턴 보좌관에게도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여정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며 사의를 표했다. 그러면서 “북·미 간 대화 모멘텀을 유지하고 ‘톱다운’ 방식으로 성과를 확보하는 게 필요하다. 가능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전날 상원 외교위원회에 출석, 대북 제재에 대해 “약간의 여지를 남겨두고 싶다”는 말을 두 차례 반복했다. ‘여지’라는 표현과 관련해 한 번은 ‘space’, 다른 한 번은 ‘room’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면서도 “비핵화에 대한 검증이 완료될 때까지 대북 제재는 유지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강준구 기자, 하윤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