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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려나도 다시 빠지는 ‘마약의 늪’… 처벌보다 치료가 먼저다

입력 2019-04-23 04:05:01




집행유예 기간에 다시 마약을 한 혐의로 기소된 30대 A씨는 ‘치료감호’를 원했다. 치료감호는 수용소에서 치료를 받고 그 기간 형집행을 대신하는 제도다. A씨는 마약중독이라는 정신감정 결과를 받았고 가족의 동의도 얻었다. 그러나 검찰은 끝내 치료감호를 청구하지 않았다. 사건을 담당한 박진실 변호사는 “치료감호는 검찰이 청구하지 않으면 법원이 판단할 권한이 없다”며 “중독에 대한 인식 없이 마약사범을 범죄자로만 바라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말했다.

마약범죄는 ‘재범과의 싸움’이다. 연예인과 재벌가의 마약 투약 사건이 잇달아 터져나오면서 마약 전문가들은 일상에 파고든 마약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처벌보다는 ‘치료’ 중심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마약중독을 질병으로 바라보고 체계적인 치료재활 시스템을 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대검찰청이 발간한 2017년 마약류 범죄백서를 보면 2017년 마약사범의 재범률은 36.3%를 기록했다. 인원으로 따지면 5131명이다. 같은 해 치료감호 실적은 16명에 불과했다.

2017년 전국 22곳 마약류 중독자 전문치료병원에서 입원·외래 치료를 받은 치료보호의 실적은 330명으로 집계됐다. 2016년에 비해 31.1% 증가했다. 이 중 검찰이 의뢰한 경우는 13건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스스로 원해서 치료에 들어갔다. 서울의 한 경찰서 마약수사팀에서 근무하는 경찰관은 “이번에는 꼭 고치고 싶다고 다짐하던 마약사범도 금세 다시 사회로 나와 재범을 저지르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며 “‘치료감호를 받고 싶었는데 잘 안 보내주더라’고 말하던 마약사범도 있었다”고 전했다.

치료재활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는 조건으로 기소유예 판정을 받은 마약사범은 해마다 늘어 2013년 140명에서 2017년 722명을 기록했다. 그러나 전문인력과 체계적인 치료 프로그램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관련 지원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법원 판결에 따라 보호관찰 대상이 된 마약사범 역시 촘촘하게 관리되지 못하는 현실이다. 현재 전국 보호관찰소 관리를 받는 마약류 사범 수는 2240명으로 파악됐다. 법무부는 보호관찰 대상을 전문가와 1대 1로 매칭시켜 관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현실성이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광주의 한 통합중독관리센터 관계자는 “마약뿐 아니라 알코올, 도박 등 다른 중독 문제도 다루기 때문에 인력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라며 “1대 1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미국과 호주는 마약 전문 법원을 두고 단계별 치료 프로그램과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다. 박성수 세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투약 사범은 처벌 위주보다 치료보호 위주로 접근해야 한다”며 “우리나라는 마약법원까진 아니더라도 약물교도소를 따로 두고 교정·교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간 마약재활센터 ‘다르크’의 원유수 팀장은 “당뇨를 평생 관리하듯 마약 중독도 질병이고 평생 관리가 필요하다”며 “마약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을 만들 때엔 언제나 재범을 염두에 둔 단계적 시스템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진실 변호사는 “클럽 버닝썬 사태로 불거진 마약 문제를 자극적인 이슈로만 다룰 게 아니라 마약 사범을 앞으로 어떻게 치료 관리할 것이냐는 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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