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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4 독과점 막아라”… 스크린 상한제 도입 목소리 커진다

입력 2019-05-03 00:05:02
‘어벤져스: 엔드게임’ 개봉일인 지난 24일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서울 강남구의 한 극장을 찾은 관람객이 티켓 자동판매기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뉴시스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관람 중인 극장 내부의 가상 모습.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이하 ‘어벤져스4’)이 극장가를 집어삼켰다. 지난 24일 개봉 이래 연일 80%에 육박하는 상영점유율을 차지하며 관객을 쓸어 모으고 있다. 상영 11일 만인 4일 1000만 관객 돌파라는 대기록을 눈앞에 둔 상황, 일각에서는 과도한 스크린 몰아주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어벤져스4’를 향한 관객 반응은 개봉 전부터 뜨거웠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1세대를 마무리하는 작품이라는 사실만으로 관심이 쏠렸다. 기대치를 반영하듯 사전 예매량만 230만장으로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다. 예매 오픈 시 접속자가 몰려 이례적으로 극장 사이트가 다운되기도 했다. 역대 최고 오프닝 스코어(133만8749명)도 경신했다.

한동안 보릿고개를 겪던 극장들은 ‘어벤져스4’ 특수에 사활을 걸었다. 개봉 첫날부터 2760개에 달하는 스크린을 배정했다. 급기야 27일에는 역대 최고치인 2835개를 찍었다. 압도적인 스크린 수를 보유하고도 ‘어벤져스4’는 연일 매진 사례를 기록 중이다. IMAX, 4DX 같은 특수관이나 관객이 몰리는 프라임 시간대 티켓을 구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실 관람객 비율을 의미하는 좌석점유율도 80%를 크게 웃도는 상황이다. 이 영화를 찾는 실질적인 관객 수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수요에 따른 공급”이라는 극장들의 논리에 자연스럽게 힘이 실린다. 관객들은 ‘착한 독과점’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군함도’(2017)가 사상 처음으로 2000개 이상의 스크린에 걸려 거센 비판을 받았던 것과 대조된다.

그럼에도 스크린 독과점 논란을 피할 수는 없다. 사실상 극장에서 ‘어벤져스4’ 이외의 영화는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일부 극장에서는 모든 스크린을 ‘어벤져스4’에 배정했다. 심지어 기존 상영 예정작을 ‘어벤져스4’로 교체하고 예매 고객들에게 취소 통보를 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피해 고객들은 트위터를 통해 줄지어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박우성 영화평론가는 지난 26일 이 같은 사태를 한탄하는 글을 트위터에 남겼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무섭다. 스크린 독점은 이제 딱히 문제시되지도 않는다. 문제가 없는 게 아니라 그래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문제를 제기하면 일부 대중이 먼저 나서서 ‘착한 독점’이라며 반발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독점은 일상이 되었다.”

영화계의 다양성과 관객의 선택권을 위해서는 독과점을 방지하는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 견해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관객의 선택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나, 90%가 넘는 관객이 한 영화에 쏠리는 현상은 우려스럽다. 영화산업의 질서가 붕괴돼 버린 상황에 더 이상 어떤 판단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제도 도입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도 “어느 때보다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점유율이 높은 영화에 스크린을 몰아주는 관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라며 “그렇다고 상업성을 중시하는 멀티플렉스 극장에 스크린 쿼터를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단순히 멀티플렉스 내 상영관을 넓히는 것 이상으로 독립·예술영화관을 늘려나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스크린 상한제가 유력한 방안으로 떠오른다. 앞서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22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스크린 상한제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스크린 상한제는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같은 영화가 프라임 시간대에 상영되는 전체 영화 횟수의 50%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다. 문체부는 이미 법 개정을 위한 구체적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장관은 “한국영화가 세계 시장에서 성장하려면 더 다양하고 좋은 영화가 많이 나와야 한다. 이를 위해 스크린 상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한 반발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시장의 자율성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극장들이 특정 영화를 장기 상영하거나 프라임 시간대에 2~3편의 작품을 몰아 배정하면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사실 ‘어벤져스4’의 흥행은 스크린 독과점 문제와는 별개로 봐야 한다. 워낙 작품 자체로 센세이셔널하기 때문에 그냥 이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라고 전제한 뒤, “독과점 방지를 위한 정책적 움직임이 시작된 데 대해선 긍정적이다. 영화인들이 지지를 보내줘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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