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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연중 최고 대목인데 매출 뚝… ‘슬픈’ 카네이션

입력 2019-05-07 04:05:01


어버이날을 이틀 앞둔 6일에도 서울 서초구 양재동 화훼공판장 지하매장은 한산했다. 빨강 분홍 연두 등 다채로운 색의 카네이션 꽃바구니는 대부분 주인을 찾지 못했다.

“10년쯤 전만 해도 이맘때면 손님들이 한두 시간씩 줄 서서 꽃을 사갔는데, 이제는 우리가 그렇게 기다리고 있잖아요.” 20년 넘게 꽃을 팔며 자녀를 키워온 김모(52)씨는 꽃바구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김씨는 어버이날을 앞두고 밤새서 꽃을 다듬어야 했던 시절은 옛말이 됐다고 한숨을 쉬었다. 김씨 부부뿐 아니라 꽃가게 주인들은 대개 손님을 기다리며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화훼시장이 5월 ‘카네이션 대목’을 맞았지만 일선 분위기는 여전히 썰렁하기만 하다. 일선 상인들은 김영란법 시행 여파에 경기침체까지 겹치며 매출이 바닥으로 향하고 있다고 푸념했다. 꽃대신 현금이나 실속 있는 저가 선물을 선택하는 최근 트렌드까지 반영됐다.

실제 카네이션 판매량은 가파른 내리막을 걷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통계에 따르면 5월 양재동 화훼공판장의 카네이션 거래량은 2013년 28만312속이던 게 김영란법 시행 뒤인 2017년 21만975속, 지난해 17만5639속으로 줄었다. 올해는 5일 현재까지 6만1844속이 팔리는 데 그쳤다. 꽃 1속은 20송이를 뜻한다.

양재동 화훼공판장에서 20년째 꽃을 팔아온 김모씨는 “올해는 연휴가 겹쳤는데도 오히려 더 안 좋다”면서 “장사가 하도 안 되니 오래 꽃집을 해온 사람들도 매장 자리를 반납하고 나가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했다.

부적절한 고가의 뇌물 등 청탁 단속을 위해 제정된 김영란법(청탁금지법)이 엉뚱하게 화훼시장에 타격을 입혔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값싸고 효율 좋은’ 선물의 대명사였던 꽃의 이미지가 하락하는 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최근 초등학교 등 일선 학교에선 스승의날 꽃을 주고받는 일이 드물다. 청탁금지법상 꽃을 전달할 수 있는 건 학생 대표 등에 한정된다.

충청 지역의 8년차 초등학교 교사 김모(31)씨는 “요즘에는 스승의날에도 학교 앞에 카네이션을 파는 노점이 차려지지 않는다”면서 “카네이션은 선생님들도 기대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정병룡 경상대 원예학과 교수는 “처음 법이 시행될 때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생화를 주는 것조차 불법이라며 매스컴에서 지나치게 부각을 시켰다”면서 “선물로서 한번 훼손된 이미지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기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경기가 좋아야 화훼류의 수요도 늘어나지만 국내 화훼 생산량은 금융위기 직전 세계 경제가 호황을 누렸던 2005년에 정점을 찍은 뒤 내수와 수출에서 여태 동반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선물 문화의 변화도 꽃이 팔리지 않는 데 한몫했다. 한지학 툴젠 종자연구소장은 “그간 선물 문화가 변한 것도 사실”이라면서 “예전만 해도 돈이 별로 없을 시절 꽃을 주는 문화가 일반적이었지만 이제는 돈으로 대체되고 있다”고 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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