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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식업계로 들어간 공유경제… 공유주방 매장 2곳 문 열었다

입력 2019-06-20 18:55:01
규제 샌드박스 사업 대상으로 선정된 ‘고속도로 휴게소 공유주방’ 1호점이 20일 서울 만남의광장휴게소에서 문을 열었다. 왼쪽부터 이강래 한국도로공사 사장, 창업주 변혜영씨, 엄태훈씨, 이의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 식품의약품안전처 제공


건강검진센터에서 임상병리사로 일했던 변혜영(33)씨는 출산 후 재취업에 실패했다. 낮에는 4살짜리 아이를 돌봐야해 저녁시간대 일자리를 주로 알아봤지만 여의치 않았다. 카페나 프랜차이즈 등의 창업도 생각했지만 억대의 비용이 들어 포기했다. 사회생활을 원했던 변씨에게 남편은 ‘고속도로 휴게소 공유주방’ 사업을 알려줬다. 변씨는 휴게소 공유주방 시범사업자로 선정됐다. 그는 “위생 개념이 철저한 임상병리사로서의 경력을 살리고 사업을 통해 성취감도 얻길 원한다”고 말했다.

협력소비를 기본으로 하는 경제방식인 ‘공유경제’가 주택과 자동차를 거쳐 요식업까지 확대됐다. 여러 사업자가 하나의 조리공간을 공유하는 ‘공유주방’이 20일 서울만남의광장휴게소와 안성휴게소에서 각각 문을 열었다. 낮에는 휴게소 운영업체가, 밤에는 창업자가 영업한다.

한국도로공사가 신청한 휴게소 공유주방 사업은 지난 4월 규제특례심의위원회 심의를 통과하면서 식품 분야에선 최초로 규제 샌드박드 대상이 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오후 8시부터 자정까지 영업하는 조건으로 휴게소 공유주방을 허용했다. 휴게소 공유주방은 앞으로 2년간 규제특례를 적용받는다.

이른바 ‘경단녀(경력단절여성)’인 변씨는 서울 만남의광장 휴게소에서 호두과자와 핫바 등의 간식류를 팔고, 커피전문점 사장을 꿈꾸는 대학교 4학년생 엄태훈(26)씨는 안성휴게소에서 커피를 판다. 통상 초기 투자비용으로 각각 4600만원, 650만원 정도가 필요하지만 휴게소 시설을 이용하면 되므로 오로지 식자재비만 갖고 시작한다. 도로공사는 이번 시범사업에서 임대료를 면제해줬다. 엄씨는 “비용 때문에 창업을 망설이고 있었다”며 “시범사업에서 쌓은 사업 노하우와 수익을 향후 창업에 활용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공유주방을 규제 샌드박스 대상으로 선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규 영업자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고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려는 목적이다. 경기불황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과 최저임금 인상까지 맞물리면서 휘청이는 외식업계에 공유주방은 새로운 돌파구로 떠올랐다.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음식 배달 문화가 활성화 돼있는 우리나라는 공유주방이 빠르게 자리 잡기 좋은 환경으로 평가된다.

해외에서도 공유주방은 외식업계의 ‘핫한’ 영업방식이다. 일본 도쿄도의 ‘스타트업 키친’은 과자나 빵, 요리를 만들어 판매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일정 시간 주방을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영국 공유주방 온라인 플랫폼 업체 ‘키치업(Kitchup)’은 주방 공간을 가진 호스트와 제품 조리 및 판매를 하려는 고객을 연결해준다. 미국 ‘유니온 키친’은 생산시설인 주방을 내주는 것뿐 아니라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 수 있도록 컨설팅도 지원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공유주방 활성화 시도는 꾸준히 있었다. 2015년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진행한 ‘청년키움식당’이 국내 공유주방의 시초격이다. 요식업 창업을 희망하는 청년에게 일정기간 실질적인 사업장을 운영해볼 기회를 제공했다.

이후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에서도 공유주방 업체가 잇따라 생겼다. 현재 민간 공유주방 기업 ‘위쿡’이 규제 샌드박스 심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공유주방의 최대 난제는 위생이다. 현행 식품위생법이 1개의 주방에 1명의 영업자만 영업이 가능하도록 규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러 사업자가 주방을 공유하면 교차오염으로 인해 식중독 등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현장에선 공유주방 업체가 사업자등록을 하고 영업자는 공유주방 업체와 계약을 맺는 형태로 운영된다. 이러면 식품안전사고가 났을 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진다. 사업자등록이 돼있는 공유주방 업체의 이름으로 제품이 유통되지만 실질적인 제조사는 영업자이기 때문이다.

식약처가 시범사업을 통해 확인하려는 건 위생을 확보하면서 공유주방을 운영할 수 있는지 여부다. 이를 위해 식약처는 공유주방 설치 운영자에게 위생을 관리할 ‘위생관리 책임자’를 별도로 두도록 했다. 식품에서 이물이 발생했거나 식품안전과 관련해 소비자가 불만을 제기하면 이를 식약처장에게 보고하도록 했다.

영업자에게도 위생을 철저히 관리하도록 별도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소화기계 전염병 환자이거나 결핵환자, 피부병 환자 등 전염성 질환이 있는 사람은 식품 조리에서 배제된다. 전염성 질환을 앓은 사람은 병원 진단을 통해 완치됐음을 확인받은 후 조리할 수 있다. 생선·육류와 채소를 다룰 때에는 도마와 칼을 각각 구분해 사용해야 하고 식재료가 바뀔 때마다 조리기구를 매번 소독해 사용할 것을 식약처는 권고했다.

즉석식품을 제조할 때에는 ‘자가품질 검사’도 매월 실시해야 한다. 휴게소는 ‘식당’으로 분류돼 자가품질검사 의무시행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도시락이나 소스류를 제조해 배달, 판매하려는 위쿡은 향후 규제 샌드박스에 포함되면 이 조항을 지켜야 한다.

경제적 측면에서 공유주방이 효율적이긴 하지만 일정부분 규제는 유지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상도 중앙대 식품공학부 교수는 “육류나 수산물의 경우 미생물 오염이 많이 돼있어 이것들을 가열하지 않고 바로 먹는 신선채소와 함께 두면 오염될 우려가 있다”며 “주방을 공유할 수 있는 식품의 종류를 어느 정도 정해놔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위생적인 환경의 공유주방에서 만들어진 제품도 운송 과정에서 온도, 시간 등의 요인으로 오염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식약처 관계자는 “시범사업에서 공유주방이 안전성을 확보하면서도 원활히 운영되는 게 확인되면 하나의 주방에 여러 사업자가 사업자등록을 할 수 있는 쪽으로 법령을 개정할 방침”이라고 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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