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우크라이나의 20세 이하(U-20) 월드컵 축구 결승전이 펼쳐진 지난 15일 밤, 전국의 치킨집 주방장들은 쉴 새 없이 닭을 튀겨야 했다. 치킨이야말로 응원전 현장에 빠질 수 없는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배달 앱인 배달의민족에 따르면 15일 총 주문량은 역대 최대치인 150만건 이상이었는데, 특히 치킨 주문량이 평소의 3~5배에 달했다고 한다.
물론 축구 경기가 열리는 날만 치킨이 인기인 건 아니다. 치킨은 명실상부한 국민 간식의 대표주자다. 삼계탕 닭볶음탕 찜닭처럼 닭고기를 이용한 다른 요리의 인기도 상당하다. 그렇다면 세계적 잣대로 볼 때 한국인의 ‘닭고기 사랑’은 어느 정도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닭의 인기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대단하다. 국가별 1인당 닭고기 소비량을 보면 한국은 상위 20위에도 들지 못한다. 닭은 지구촌 대다수 국가에서 사람들이 가장 즐겨먹는 최고의 고기다.
최근 출간된 ‘치킨인류’(마음산책)는 인류의 식탁을 바꾼 닭의 세계를 탐사한 작품이다. 저자는 ‘누들로드’ ‘요리인류’ 같은 음식 관련 다큐멘터리로 명성을 쌓은 KBS PD 이욱정. 치킨인류는 그가 동명의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담백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지난 20일 이욱정을 만난 건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리던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였다. 그는 도서전에서 ‘오픈 키친’이라는 스튜디오를 마련해 요리책을 전시하고 강연도 펼쳤다. 인터뷰 장소가 도서전 현장이었기 때문일까. 그는 종이책을 예찬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책이야말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지식의 플랫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음식으로 따지면 책은 슬로푸드”라며 “인스턴트 음식이 범람하면 누군가는 슬로푸드를 찾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 제작과 책을 쓰는 일을 비교할 때도 그는 음식을 예로 들었다. “닭을 한 마리 잡았다고 가정해볼게요. 다큐멘터리는 닭에서 몇몇 부위만 골라서 요리를 하는 거예요. 하지만 책은 모든 부위를 사용하죠. 오랜 시간 음미할 수 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어요.”
그의 표현처럼 치킨인류에는 다큐멘터리에는 담기지 않은 정보와 감상이 한가득 실려 있다. 이욱정은 인도네시아를 시작으로 인도 이탈리아 자메이카 미국 중국 일본 한국 미국을 떠돌며 닭의 세계를 파고들었다. 어쩌면 세계에서 이런 닭고기 책은 치킨인류가 유일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욱정이 전하는 닭고기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일단 닭은 가축화에 용이했다. 기르기에 사이즈도 적당하고 생존력과 번식력도 뛰어났다. 영양학적으로도 훌륭했다. 엔간한 동물보다 양질의 동물성 단백질을 갖추고 있는 게 닭이다.
특이한 건 세 번째 이유였다. 인류사에서 닭은 각종 제의(祭儀)에 바쳐진 희생양이었다. 이욱정은 “닭이 사랑을 받은 건 닭의 운명이 인간의 그것과 닮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부연하자면 책에 담긴 이런 대목을 소개하는 것으로 갈음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4000년 동안 인간의 곁에는 닭이 있었다. 날개는 있지만 하늘을 날 수 없는. 그래서 어쩌면 우리 인간의 운명을 닮은 새. 백색의 고기, 닭은 요리하는 인류에게 또 다른 날개를 달아주었다.”
이욱정은 음식과 관련해 방송과 책과 강연과 전시를 넘나드는 콘텐츠를 앞으로도 꾸준히 선보일 계획이다. 빵 커피 맥주 등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그는 “독자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가 마지막엔 ‘큰 이야기’를 건졌다고 말해준다면 기쁠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책의 끄트머리엔 그가 “세상의 요리인류를 대신해 닭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적혀 있다. “아름다운 새여, 오늘 밤도 당신은 배고픈 우리의 영혼을 위로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