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전체메뉴보기 검색

헤드라이너 대타 ‘god’… 색 바랜 부산국제록페스티벌

입력 2019-07-01 04:05:01

 
올해 부산국제록페스티벌에는 록페스티벌에 어울리지 않는 가수가 섭외돼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8월 부산 사상구 삼락생태공원에서 열린 ‘2018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의 한 장면. 부산국제록페스티벌 홈페이지 캡처
 
올해 부산국제록페스티벌 라인업이 담긴 포스터. 부산국제록페스티벌 홈페이지 캡처


지난달 18일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의 최종 라인업이 공개됐다. 걸출한 록 뮤지션이 출연하길 바라며 잔뜩 기대하던 음악팬들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7월 27~28일 열리는 행사의 첫째 날 헤드라이너(간판 출연자)에 그룹 god가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어디 다른 나라에 있을지 모르는 같은 이름의 록 밴드가 아니었다. ‘어머님께’ ‘거짓말’ 등의 히트곡을 배출한 한국 가수 god였다. 록페스티벌에 아이돌 그룹이라니, 록 애호가들로서는 어리둥절함을 넘어 허탈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원래 첫째 날 헤드라이너는 미국 헤비메탈 밴드 시스템 오브 어 다운이 담당할 예정이었다. 1998년 데뷔한 시스템 오브 어 다운은 스래시 메탈, 하드록, 오페라 등을 버무린 공격적이면서도 이채로운 음악으로 록 골수팬의 열띤 지지를 받았다. 2006년 열린 그래미 어워즈에서는 4집에 실린 ‘B.Y.O.B.’로 ‘최우수 하드록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2005년 이후로 음반 활동이 끊긴 데다가, 한국에 온 적이 없어서 록 마니아에게 이 팀의 출연 소식은 큰 경사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스템 오브 어 다운의 역사적인 한국 공연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페스티벌 측은 지난달 6일 SNS를 통해 시스템 오브 어 다운과 계약하는 과정에서 연락하던 매니저가 가짜임을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에 덧붙여 다시 밴드와 접촉해 출연을 요청했지만 성사되지 못했음을 밝혔다. 표를 예매한 예비 관객들의 힘이 빠질 허망한 사건이었다.

god는 그렇게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의 대안으로 낙점됐다. 너그럽게 보자면 의외의 결정은 아니다. 록을 비롯해 재즈 일렉트로니카 힙합 등 하나의 장르를 특화한 대형 콘서트들도 다른 영역의 뮤지션을 초대하곤 한다. 다양성을 통해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려는 의도다.

하지만 아이돌 그룹이 ‘록’페스티벌에 메인 출연자로 서는 건 유례없는 일이다. god 측은 행사의 성격을 고려해 출연 요청을 고사하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어쩌면 처음에는 거절했을지도 모르겠다. 거듭되는 요구에 어쩔 수 없이, 혹은 수익을 중시해 제안에 응했을 것이다.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페스티벌 측에 있다. 관계자는 god를 헤드라이너로 선택한 배경에 대해 “록페스티벌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많은 시민이 즐기는 축제를 위해 불가피하게 섭외했다”고 설명했다. 2000년 출범해 올해 19회째를 맞는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은 그동안 무료로 진행되다가 올해 유료 공연으로 바뀌었다. 때문에 티켓 파워를 지닌 가수를 데려오는 것을 급선무로 뒀을 듯하다. 그러나 대중성에 지나치게 골몰한 나머지 페스티벌이 간직해 온 빛깔은 한순간에 바래고 말았다.

주최 측의 안일한 결정은 록 뮤지션들에게는 폭력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단계적으로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겠다고 해도 지금 이 페스티벌은 록을 간판으로 내걸고 있다. 그런데 밴드 음악과는 무관한 아이돌 가수를 인기가 높다는 이유로 당연하다는 듯 주연으로 캐스팅함으로써 언젠가 그 자리에 서길 갈망하며 노력하는 록 뮤지션들의 꿈을 짓밟고 비웃은 것이다.

한동윤<음악평론가>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