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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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사니-이경원] 칼의 노래

입력 2019-07-08 04:05:01


뙤약볕 내리쬐던 6일, 송인택(56) 울산지검장은 경기 성남시 분당구 텃밭에서 땀에 젖어 있었다. “2년생 쉬나무를 심어 4년 키운 거야. 저쪽은 헛개나무고… 피나무도 자라면 산에 올려야지.” 그는 벌들이 모인다는 밀원수(蜜源樹)들의 자리를 자랑스레 가리켰다. 퇴임을 2주 앞둔 지검장은 메리야스 바람으로 포도를 따서 씹었다. 그는 “원래 갔어야 할지도 모르는 갈림길을 이제 간다”고 말했다.

그는 대전에서 농사를 짓는 8남매 가정의 차남이었다. 갈림길에서 집안의 결정은 장남이 농사 짓고 차남이 공부하는 것이었다. 그는 고려대 법대를 나와 1989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집안의 영광 아닐까, 송 지검장은 무표정하게 “집안 땅 다 팔아먹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를 검사의 길로 이끈 건 ‘산감’이다. 누에채반을 만들려 소나무를 베었던 그의 아버지는 산림감시원이 뜬 날 경찰서에 가 고초를 겪었다. 학생 송인택은 “아버지, 제가 경찰이 될게요”라고 말했다. 공부하다 보니 경찰을 지휘하는 검사라는 직업이 보였다.

그의 가난한 고시생 시절은 최근 히트한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하숙비를 절반 내고 밥만 먹고, 잠은 학교 도서관에서 잤다. 중앙도서관이 소등하는 오후 11시면 그는 4층 화장실에 숨었다. 숨죽인 채 화장실 칸 문을 살짝 열어두는 게 비결이었다. 수위는 닫힌 곳은 밀어보면서도 열린 문틈은 지나쳤다. 수위가 나가면 그는 화장실을 나와 침낭 속에 들어갔다. “맨발로 나오면 소리가 안 났다”고 송 지검장은 말했다.

남들 보기엔 ‘별 볼 일 없는 사건’ 검사였다. 그의 책상 위에는 재벌도 정치인도 좌우도 없었다. 대신 30만원짜리 사기, 술집 주먹다짐, 자동차 충돌 기록이 쌓였다. 당사자에겐 일대의 사건이었다. 초임 검사 송인택은 “내 방에 들어오는 사건 속엔 억울한 사람이 없게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단죄에 앞서 이해하려 애썼다. 유사수신업자의 말이 알쏭달쏭해서, 그는 114를 눌러 가까운 고교의 수학 선생님을 찾았다. “투자 20일째에 원금과 20% 이자를 준다는데, 1년이면 얼마입니까?” 등비수열 공식을 받아든 그는 “왜 정주영씨도 이병철씨도 여기 투자하지 않느냐”고 피의자를 야단칠 수 있었다.

고속 뺑소니 사고가 그려지지 않아 새벽 시각 현장에 가 보니 사실상 주차장인 갓길이었다. 피해를 주장하던 이가 사기미수로 실형을 살았다. 부산지검에서는 배타적 경제수역을 침범한 일본 어선을 ‘토끼몰이’로 잡고, 환율과 검거 확률을 곱해 ‘나포 담보금’ 체계를 세웠다. 해양수산부 국장이 전화해 “고맙다”고 말문을 여는데 그는 “바쁘다”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는 반지하 방 살던 사기범에게 500만원 벌금 대신 집행유예를 구형했다. 누군가에겐 하루 술값이지만, 그의 가족은 500만원이 없으면 거리에 나앉을 게 뻔하다는 생각이었다. 반대로 ‘부산 파이낸스 사태’ 일당에 대한 구형량은 모두 합해 징역 100년을 넘었다. 변호인단이 “장영자도 15년이다”고 반발하자, 그는 “50억원 숨겨 놓고 몇 년 지나 나온다면, 나부터 그 일을 하겠다”고 재판부에 의견서를 냈다.

19일 퇴임하는 그는 보람 대신 후회를 말했다. 3가지 장면이 떠오른다 했다. 초임 때 그는 3명이 서로 피해자라 주장하는 사기를 풀지 못해 공소시효를 넘겼다. 언젠가는 첩보를 받아 깡패를 구속했는데, 나중에 보니 경쟁업자의 청부 수사를 한 셈이었다. 끝으로, 그는 영등포 한 폭력조직 두목의 자택을 압수수색한 날을 떠올렸다. 그날따라 그 두목의 초등학생 아들은 조퇴했다. 송 지검장은 대법원판결 뒤 그 두목을 불러 “당신 아들 앞에서 못 할 짓을 했다”고 말했다 한다.

원두막에 바람이 불자 그는 문득 “꽃이 피는 데 7년도 걸리고 10년도 걸린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5월 국회의원들에게 검경 수사권 조정을 다시 생각해 달라고 이메일을 보냈다. ‘별 볼 일 없는 사건’ 속에 있던 검사가 아니면 못할 말이었다.

이제 그는 접도로 나무를 접붙이고 내검칼로 벌통을 연다. “칼 하나 내려놓고 다른 칼을 드시느냐”고 물었다. 그는 “검사를 칼잡이라 부르는 데 반대한다. 칼을 휘둘러본 적 없다”고 말했다.

이경원 사회부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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