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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생 동갑내기, 불모지 한국 다이빙에 ‘꿈’으로 떴다

입력 2019-07-15 04:05:01
한국 다이빙 국가대표 김수지(왼쪽 사진)가 13일 광주 광산구 남부대 주경기장에서 열린 2019 국제수영연맹(FINA)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1m 스프링보드 시상식에서 동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수지는 한국 다이빙 사상 첫 세계선수권 메달 획득이라는 역사의 주인공이 됐다. 오른쪽 사진은 14일 같은 종목 남자부 결승에서 파이크 동작을 취하고 있는 우하람. 연합뉴스


1948 런던올림픽 다이빙 남자 10m 플랫폼 금메달리스트인 고(故) 새미 리(2016년 사망). 캘리포니아주에서 나고 자란 미국의 한국계 다이빙 국가대표였다. 미국 다이빙의 영웅이었고 의사였으며 군인이었다. 1952 헬싱키올림픽에서 두 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어 ‘미국의 영웅’이 됐지만, 이듬해 군의관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해 모국 땅을 밟았다.

모국은 잿더미로 변했지만 새미 리가 이곳에서 찾은 것은 미래였다. 파병 첫 해 휴전한 한국에서 2년을 더 체류하며 다이빙 선수를 양성했다. 전쟁을 막 끝내고 볼품없게 마른 젊은이들을 수영장 나무판 앞에 세워 걷고 도약하고 입수하는 기초 동작을 하나하나 가르쳤다.

그렇게 육성한 선수가 이필중과 송재웅이다. 이필중은 1960 로마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다이빙 사상 첫 국가대표, 송재웅은 1970 방콕아시안게임 다이빙 남자 10m 플랫폼 금메달리스트다. 이 금메달은 한국 다이빙의 유일한 국제대회 우승 기록이다.

미국과 중국이 양분한 세계의 벽은 한국 다이빙에 좀처럼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올림픽과 국제수영연맹(FINA)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반세기 넘게 다이빙 메달을 수확하지 못했다. 지난 대회만 해도 그랬다.

2019 FINA 광주 세계수영선수권에서 한국 다이빙 사상 처음으로 메달을 수확한 여자부 김수지(울산시청), 입상권 문턱까지 다가간 남자부 우하람(국민체육진흥공단)은 2020 도쿄올림픽에서 광맥(鑛脈)을 뚫을 스물한 살 동갑내기다. 이들은 새미 리가 한국계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지 정확하게 반세기 뒤인 1998년에 나란히 태어났다. 새미 리가 그토록 꿈꿨을 다이빙 불모지 한국의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조준한 기대주로 성장했다.

김수지는 13일 광주 광산구 남부대 주경기장에서 열린 다이빙 여자 1m 스프링보드에서 동메달을 차지했다. 5차 시기 합계 257.20점을 받아 중국의 천이원(285.45점), 미국의 사라 베이컨(262.00점)과 함께 시상대에 올랐다. 한국 다이빙 사상 첫 번째이자 경영의 박태환(30)이 2007 멜버른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따낸 뒤 한국 수영 사상 두 번째로 세계선수권대회 메달을 수확한 선수가 됐다. 앞서 한국 다이빙의 이 대회 최고 성적은 권경민·조관훈의 2009년 로마 대회 남자 10m 싱크로나이즈드 플랫폼 6위다.

김수지에게 자극을 받은 우하람도 선전했다. 14일 다이빙 남자 1m 스프링보드 결선에서 6차 시기 합계 406.15점으로 4위에 올랐다. 앞서 이 대회 개인 최고 성적은 2017년 부다페스트 대회 남자 3m 스프링보드 7위. 2년 사이에 순위를 세 계단이나 끌어올려 시상대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이번 대회 개최국 한국은 다이빙 대표팀의 선전으로 메달을 품에 안고 출발하게 됐다. 대회 후반부에 배정된 경영에서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들이 입상하면 종합 순위 ‘톱10’도 기대할 수 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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