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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양자 협의부터 진실 공방전… 일, 국제여론 의식 의도된 전략

입력 2019-07-15 04:05:01
한·일 과장급 실무협의를 마친 산업통상자원부 전찬수(왼쪽) 무역안보과장과 한철희(오른쪽) 동북아통상과장이 지난 13일 귀국해 김포국제공항에서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지난 12일 열린 양자협의에서 양국은 수출규제 조치를 두고 6시간 넘게 대립했다. 연합뉴스




한·일 양국의 첫 실무진급 양자협의가 ‘진실 공방’이라는 진흙탕 싸움에 빠졌다. 한국 정부는 일본에 수출제한 조치 철회를 요청했다고 밝혔지만 일본 정부는 ‘그런 적 없다’며 맞선다.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 실무진의 기자회견에 “회의 내용을 외부에 알렸다”며 항의하는 촌극도 펼쳐졌다. 브리핑(일본 정부)→기자회견(한국 실무진)→기자회견(일본 경제산업성)을 거치면서 날 선 반박, 재반박이 이어졌다.

회의록 자체가 비공개이기 때문에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 판가름하기 쉽지 않다. 다만 일본의 여론전 저변에는 국제사회를 의식하는 시선이 깔려 있다. 한국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분쟁해결 절차 제소 이전에 갈등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했다는 ‘기록(트랙 레코드)’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셈법이다. ‘화이트리스트 국가(백색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돌릴 가능성도 낮아졌다. WTO를 통한 분쟁해결을 피하기 힘들다는 분석이 나온다.

진실 공방의 출발선은 지난 12일 오후 일본 경제산업성 별관에서 열린 한·일 실무진 양자협의(일본은 설명회라고 주장)다. 좁은 회의실에서 만난 양국의 과장급 실무진은 수출규제 조치를 두고 5시간여 동안 비공개 협의를 가졌다. 한국 정부는 협의 결과를 보도자료와 같은 서면으로 남길 수 없다는 일본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대신 양국 정부가 각자 협의 결과를 기자들에게 브리핑하는 선에서 합의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브리핑 내용이 논란을 촉발했다. 경제산업성 간부급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한국 측에서 (수출규제) 철회를 요구하는 발언은 없었다”고 전했다. 양자협의에 참석했던 전찬수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안보과장, 한철희 산업부 동북아통상과장은 일본 측 발표가 사실과 다르다며 곧바로 반박했다. 이들은 지난 13일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출국 직전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는 일본 측 조치에 유감을 표명했고 철회를 요청했다”고 강조했다.

이 발언이 나오자 일본 경제산업성은 같은 날 기자회견을 열고 “재차 회의록을 확인했다. 철회를 요구했다는 명쾌한 발언은 없었다”고 재반박했다. 한국 정부가 회의 내용을 외부에 알려 신뢰를 훼손했다며 주일 한국대사관을 통해 항의했다고도 덧붙였다.

양국 정부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이번 협의가 ‘협상의 기록’으로 남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를 WTO에 제소할 방침이다. WTO 분쟁해결 절차의 첫 단계인 양국 협의가 무산되면 3명의 통상전문가가 참여하는 패널이 구성된다. 이들은 두 나라의 보고서를 토대로 심리를 진행한다. 이와는 별개로 오는 23~24일 WTO 최고기관인 일반이사회에서도 일본의 수출규제 안건을 다룬다. 한국이 적극적으로 분쟁해결에 나섰다는 흔적이 남는 기록은 심리나 이사회 회의 등에서 한국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일본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기록을 남기고 싶을 리 없다.

‘수출규제 철회 요청’이라는 문구를 두고 극과 극으로 갈리면서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배제할 가능성은 높아졌다. 백색국가는 안보상 수출 우호국이다. 전략물자 수출의 편의를 봐주는 국가를 말한다. 한국은 2004년부터 백색국가에 올라 반도체 소재 등 1112개의 일본산 전략물자를 원활하게 수입해 왔다. 일본은 오는 24일까지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의 의견 수렴을 마치고 한국을 제외한다는 입장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14일 “그 이전에 일본 정부와 협의 노력을 더욱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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