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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캄보디아 아이들에게 베토벤 들려주고 싶다”

입력 2019-07-15 18:45:01
캄보디아 최초의 교향악단 ‘프놈펜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역사적인 첫 공연을 준비 중인 이찬해 프놈펜 국제예술대학교 총장. 이 총장은 “영광스럽다. 예술이라는 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일”이라고 말했다. 서영희 기자




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반도 남서부에 위치한 작은 나라 캄보디아. 문화예술의 불모지였던 이곳에 반가운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진다. 캄보디아 최초의 교향악단 ‘프놈펜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역사적인 창단을 앞두고 있다. 누구도 시도치 않았던 이 일을 현실화한 건 한국의 음악인이다.

그 주인공은 연세대 명예교수이자 선교사인 이찬해(74) 프놈펜 국제예술대학교 총장. 연세대 작곡과 교수를 지낸 그는 은퇴 후 남편인 엘드림재단 민성기(74) 대표와 함께 캄보디아로 건너가 전 재산 50억원을 들여 2010년 프놈펜 국제예술대학교를 설립하고 9년째 예술 전문 교육을 해왔다.

“하나님께서 내게 일을 시키시겠구나 하는 기대감이 있었어요. 가난한 나라,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로 가서 사역을 하자는 결심이 들었죠. 가능하다면 지금까지 제가 해온 음악을 사용할 수 있었으면 했어요. 그 조건에 딱 부합하는 곳이 캄보디아였지요. 당시 예술 교육이 전무했거든요.”

오케스트라 창단은 이 총장의 오랜 염원이었다. 캄보디아 최초의 음악 교과서를 제작하고 매년 음악 콩쿠르를 개최하는 등 음악 교육의 현지 보급에 힘써 온 그는 음악문화 수준의 척도라 할 수 있는 교향악단이 캄보디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늘 안타깝게 여겼다.

이 총장은 7년간의 노력 끝에 수도명을 붙인 ‘프놈펜 심포니 오케스트라’ 명칭 사용 승인을 받아냈다. 또 정부 소속인 짜뚜묵 국립극장 대관 승인까지 얻어 오는 8월 31일 첫 공연을 할 예정이다. 공연 준비에 한창인 와중에 일시 귀국한 그를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본사에서 만났다.

이 총장은 “세계 만국 사람들이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알지만 캄보디아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에게 일단 음악을 들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나아가 악기를 가르쳐주면 스스로 이 나라의 문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제반 상황은 여전히 열악하다. 악기를 다룰 줄 아는 단원을 찾는 일부터 여의치 않았다. 공연계 잔뼈가 굵은 오병권(64·사진) 전 대전예술의전당 관장과 연이 닿은 이후 해결점을 찾아가는 중이다. 오 전 관장이 국내 원로 연주자들을 중심으로 현지 연주자 교육을 겸할 지원자들을 수소문하고 있다.

오 전 관장은 “현재 캄보디아 현지 연주자들 실력은 우리나라의 잘하는 초등학교 합주부보다도 못한 수준”이라며 “그러나 이것이 프놈펜 심포니 오케스트라 역사의 첫 페이지로 기억되지 않겠는가. 이 오케스트라가 언젠가 동남아의 정상급 오케스트라로 발전할 수도 있다”고 자신했다.

이 총장이 그리고 있는 ‘빅 픽처’는 문화적 혜택이 동남아 전체로 돌아가는 것이다. “방글라데시나 라오스 같은 나라에도 학교를 세우고 싶지만 현실적 어려움이 있더군요. 대신 그 나라 학생들을 공부시켜 보내면 그들이 각자의 나라를 이끄는 주축이 되지 않을까요. 제가 그때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웃음), 누군가 이어받아서라도 해냈으면 합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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