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전체메뉴보기 검색

[혜윰노트-김윤관] 목수가 국회의원에게 배운 대화법

입력 2019-07-19 04:10:01


가구를 만드는 목수가 직업이다 보니 사람을 만날 기회가 흔치 않다. 대개의 시간을 공방에서 한두 명의 동료 목수와 보낸다. 전시나 납품이 닥치면 서너 달을 거의 그 한두 명의 동료 얼굴만 보고 산다. 동료들이야 세상에서 더할 나위 없이 편하고 말이 잘 통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가끔 몸에서 나무냄새가 안 나는 세상 사람들과 말을 섞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공방 마당에 택배차량만 들어와도 얼굴이 환해지는 걸 보면 동료 목수들의 마음도 나와 별 다르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세상에 나가 사람들과 말을 섞으면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종종 내 의사를 명확히 건네기가 어렵고, 사람들 말의 진의를 분명하게 이해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로 토론이라도 벌어지면 상황은 더 난감해진다. 아마도 공방에 갇혀 있는 동안 내가 사람들과 말을 나누는 방법, 그러니까 ‘대화’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것이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유튜브’였다.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에서 대화하고 토론하는 방법을 익히자, 라는 계산이었다. 평생 시사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던지라 ‘대화와 토론’이라니 자연스럽게 ‘국회/국회의원’이라는 단어가 떠올랐고, 유튜브 검색을 통해 국회에서 열린 각종 청문회와 상임위 회의 영상을 찾아봤다. 국회라고 하면 단연코 ‘대화와 토론’으로 운영되는 곳 아닌가!(여기까지 읽고 벌써 한숨을 쉬는 독자들의 입김이 느껴진다)

어리숙하기만 한 이 목수는 뜻밖에도 거의 서너 달을 유튜브에 빠져 살았다. 지난 4~5년 동안의 각종 청문회는 물론 웬만한 상임위의 회의는 거의 다 본 것 같다. 소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어떤 내용인지도 이번 기회에 다 알게 되었고, 내가 이름을 기억하는 최초의 검찰총장이 된 윤석열이란 사람의 직업적 부침은 물론 그의 아내가 가진 재산 규모까지 제법 소상히 알게 되었다. 정치와 관련된 시사 정보에 관해서라면 아마 목수들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세상에 나가 사람들과 ‘대화와 토론’을 나눌 자신감이 반토막 나버린 것이다. 그 수많은 국회의원들의 회의 영상 속에 말다운 말은 지극히 희귀했고, 대화다운 대화는 거의 완전히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배운 것은 거짓말하기, 억지부리기, 남의 말 끊기, 남의 말 비틀기, 고함과 호통치기 등등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는 거의 재앙에 가까운 것들뿐이다.

동료들이 눈치를 줄 정도로 서너 달 동안 영상에 빠져들게 한 재미는 ‘강 건너 싸움 구경’이었던 것이다. 싸움 구경에 빠져 있는 동안 못된 습이 들어 심지어 공방의 동료들까지 “요즘 선생님 말투가 이상해졌다”는 말을 한다. 시쳇말로 나는 ‘폭망’한 것이다.

대화란 듣기와 말하기를 뜻한다. 듣기란 상대가 말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참뜻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기본이다. 말하기란 자신이 가진 분명한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기본이다. 때문에 듣기와 말하기는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다. 상대가 내게 전달하고자 하는 뜻을 정확히 이해하려는 자세 그리고 말하기 전에 나의 생각을 분명히 하려는 자세와 수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그 기본 중의 기본은 말에 거짓이 없어야 한다. ‘거짓이 없다’는 전제가 사라지면 대화를 통해 유의미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내가 서너 달 동안 본 국회의 수많은 회의 속에는 그러한 기본을 발견하기가 몹시 어려웠다. 오히려 국회의 모습은 혹시 내가 가진 대화에 관한 상식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상식이 아닌건가, 하는 의심이 들게까지 했다. 내가 한 말을 나의 진의와 상관없이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자신이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 때문에 크게 상처 받은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내게 상처를 준 그 모든 사람들이 복제되어 모여 있는 곳이 국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국회의 영상에서 본 못된 모습들이 습이 되어 몸에 들어와 버렸으니 세상에 나가 어찌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지 난감하기만 하다. 당분간 유튜브를 끊고 자중하며 목공에 집중해 못된 습을 털어내고 정화해야 할 것 같다.

시골의 좁은 공방에서 나무만 만지고 사는 목수가 지체 높으신 국회의원들의 말에 토를 달다니 분명 이 시대가 요지경 속인 것만은 확실하다.

김윤관(김윤관목가구공방 대표목수)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