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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커스-진창수] 참의원 선거 ‘아베 성적표’

입력 2019-07-22 04:05:01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예상대로 여당이 과반수를 차지했지만 헌법 개정 추진이 가능한 3분의 2 의석에는 미치지 못했다. 참의원 선거는 정권을 선택하는 선거가 아니어서 국민적 열기가 높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번처럼 열기가 느껴지지 않는 선거는 없었다. 선거 기간 중임에도 선거운동을 볼 수 없는 ‘조용한 선거’였다. 아베 정권 유지에는 별다른 변동이 없을 것으로 예측됐기 때문이다. 일본 국민은 야당에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있고, 야당의 ‘아베 비판’에도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번 선거가 국민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고 해서 일본 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아베 신조 총리에게는 헌법 개정을 추진할 수 있느냐, 총리로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느냐를 가름하는 중요한 선거였다.

선거 초반에는 아베 총리가 헌법 개정을 강하게 제기하면서 쟁점으로 삼고자 했다. 이번 선거가 자신이 개헌을 추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의도와 달리 연금 문제와 다른 이슈에 묻혀 헌법 개정은 국민적 쟁점으로 부각되지 못했다. 선거 결과도 개헌안 발의에 필요한 3분의 2 의석을 넘기지 못했다. 결국 아베 총리의 개헌 추진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그가 앞으로도 개헌에 열의를 가진다면 9조를 포기하면서 헌법 개정의 길을 택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는 개헌을 했다는 의의는 있지만 자신이 주장하는 9조 변경에는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베도 이제 자신이 추진하는 헌법 개정이 가능하지 않다는 현실적 고려를 할 수밖에 없다. 여당 내 개헌 추진 세력이 3분의 2를 넘었음에도 잘 안 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베는 이번 선거로 사실상 개헌 동력을 잃었다.

참의원 선거 이후 아베의 영향력이 과연 얼마만큼 유지될 수 있는지도 예의 주시할 대목이다. 자민당이 참의원에서 단독 과반수를 차지하거나 좀 더 선전했다면 아베는 4선도 노릴 수 있었다. 이제 그 길은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 그러나 여당(자민당+공명당)이 안정적인 과반수를 차지함으로써 아베 정권의 지속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앞으로 일본 정치권에서 아베 정권이 지속할 것이며 자민당 내에서도 아베 총리의 영향력이 유지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아베 총리의 최대 무기는 선거의 얼굴이다. 지난 다섯 번 선거에서 모두 승리했으며 이번에도 선거에 강한 이미지를 보였다. 따라서 자민당 내 포스트 아베를 둘러싼 경쟁이 시작되더라도 중의원 해산권을 가진 아베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아베 파벌이 다른 파벌의 두 배가 되기 때문에 그의 지원을 얻지 않고 총리가 되기란 쉽지 않다. 킹메이커로서 아베의 영향력은 오래갈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아베 총리가 한·일 관계를 참의원에서 이용한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선거 이후 한국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정작 선거에서는 한·일 관계가 쟁점이 되지 않았다. 다만 아베의 한·일 관계 강공이 선거에서 보수층 결집을 유도하는 데는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번 선거 결과에서 아베가 한·일 관계를 개선하고자 하는 유인은 없다. 아베가 한국에 한 방 먹였다고 일본 보수층은 후련해한다. 따라서 아베는 보수층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일 관계의 출구전략을 심각히 고려하지 않는다. 한·일 관계에 대한 아베의 집요한 공세는 준비된 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에도 아베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그 반향은 작다. 문제는 아베가 막무가내로 나왔을 때 일본 내 혐한 분위기에 묻혀 건전하고 합리적인 목소리가 보이지 않는 데 있다. 앞으로 양국 국민이 피해를 보는 최악의 상황은 불가피해졌다. 서로가 냉정하게 상황을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출구를 모색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우선 한·일 양국의 경제계가 ‘한·일 경제협의회’를 통해 피해 최소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이 점차 확산되어 양국 정부가 해결의 장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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