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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이영미] 일본회의와 무서운 일본

입력 2019-07-23 04:05:01


그러고 보면 일본군 위안부를 인종주의라는 관점에서 바라본 적은 없었다. 적어도 한국 내에서 그런 시도는 들어본 적이 없다. 전쟁터의 성노예 제도와 인종차별주의라니. 어색한 조합 아닌가. 일본계 미국인 미키 데자키 감독의 위안부 다큐 ‘주전장(主戰場)’은 그래서 놀랍다. 영화는 완전히 새로운 지점, 현대 일본의 인종주의라는 낯선 좌표 위에서 군 위안부 문제를 바라본다. 지금 왜 그렇게 해석하는가. 데자키 감독은 이것이 진짜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그는 위안부를 바라보는 일본 극우와 양심적 지식인, 피해자 한국의 입장을 주장, 반박, 재반박 형태로 빠르게 훑으며 역사수정을 향한 일본 극우의 집요한 욕망을 추적한다. 그리고 영화의 막바지에 이르러 욕망의 최종 생산기지에 도달한다. 아베 내각을 배후조종한다는 극우 로비단체 일본회의다.

1997년 출범한 일본회의는 일본에서도 3~4년 전에야 주목받기 시작한 미지의 집단이다. “일본판 티파티”(CNN)이자 “초국가주의 단체”(르몽드) 혹은 “기묘하게도 일본 언론의 주목을 거의 받지 않는”(이코노미스트) 단체다. 논픽션 ‘일본회의의 정체’ ‘일본 우익 설계자들’을 종합해보자면 일본회의가 정가에 갖는 영향력은 막강하다는 말을 넘어선다. 3차 아베 내각에서 일본회의국회의원간담회(일본회의 지원단체) 소속 의원은 20명 중 13명(65%), 의원 수는 281명이다(2015년 기준). 2014년에는 비율이 84%였다. 면면도 화려하다. 아베 신조 총리와 아소 다로 재무상, 기시다 후미오 전 외무상,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이나다 도모미 전 방위상 등이 다 일본회의 소속이다. “아베 내각은 일본회의 동료 내각”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더욱 서늘한 건 이들의 종교색이다. 멤버 3분의 1은 종교인이고, 조직 DNA는 더욱 종교적이다. 바닥부터 설득하는 이들의 저인망식 접근법은 종교단체 방식으로 평가받는다. 일본회의의 자금줄은 신사본청을 정점으로 한 신도계, 손발 역할은 ‘생장의 집’이라는 신흥종교 출신들이 맡는다. 살림을 총괄하는 가바시마 유조 사무총장과 ‘아베의 브레인’ 이토 데쓰오 일본정책연구센터 대표, 아베 최측근인 총리보좌관 에토 세이이치 등은 모두 ‘생장의 집’ 활동가 출신이다.

이들에게는 “컬트적 집단”이란 딱지도 붙었다. 이유는 기관지 기고문을 보면 이해된다. “현행 헌법의 국민주권 사상은 부정되어야 한다”거나 “제정일치 국가철학을 부정하는 것은 역사를 모독하는 행위” “제사 국가는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구원하는 철학”이라는 식의 주장이 버젓이 나온다. 국민주권은? 정교분리는? 이들의 논리에 근대 민주주의 대전제는 아예 흔적이 없다. 한 발 더 나간 주장도 있다. 일본정책연구센터는 개헌의 최종 목표로 “메이지헌법 복원”을 내세운다. 1945년 패전 이전 천황을 신으로 한 정교일치의 대가족 국가. 이들에게 ‘점령헌법(평화헌법)’은 개정 대상이 아니라 무효화 대상인 것이다. 패전 이전 일본이 이상적인 국가였고, 그런 이상국가를 건설한 일본인이 무오류의 민족이라면, 그 시대에 군 위안부 같은 범죄가 벌어졌을 리 없다. 주장은 이렇게 전개된다. 극우들이 끝내 ‘성노예가 아니라 매춘부’라고 우기는 이유다. 바로 데자키 감독이 말한 인종주의 사고방식이다. 너희가 틀린 건 우리가 틀릴 리 없기 때문이다.

21일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 총리가 개헌 발의선에 4석 모자라는 절반의 승리를 얻었다. 개헌은 물 건너갔을까.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베와 친구들에게 개헌은 이기거나 지는 정치적 게임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싸우다 죽으면 다른 누가 이어받는 성전(聖戰) 같은 것인지 모른다. 이런 이웃을 둔 우리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다. 그저 머리 맞대고 버텨볼밖에. 그러려면 4석이 벌어준 딱 그 시간만큼이라도 내부 주먹질을 멈춰야 하지 않겠나. 다퉈보든, 화해를 하든 말이다.

이영미 온라인뉴스부장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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