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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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홍인혜] 걸터앉아 하늘까지

입력 2019-07-26 04:05:01


얼마 전 인도네시아 발리에 다녀왔다. 이번 여행에서는 예산을 대폭 줄일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특가 항공권을 구했기 때문이다. 발리는 아시아권에 있는 나라임에도 비행기 삯이 상당한데 이번에는 저가항공사에서 그 반값도 안 되는 돈으로 비행기 표를 구할 수 있었다. 성수기의 국적기와 비교하면 거의 3분의 1 가격이었다. 물론 직항으로 7시간가량 걸리는 구간을 경유를 통해 12시간에 걸쳐 가야 했지만 금액을 생각하면 버틸 만했다. 환승까지 하는 장거리 비행에 저가항공을 이용하는 것은 처음인지라 다소 긴장했지만 뭐 일반 항공사와 크게 다를까 싶었다. 하지만 따져보니 이런 차이점들이 있었다.

우선 비행기에 실을 수 있는 짐은 7㎏만 허용되었다. 평소 짐을 간소하게 꾸리는 편이라 문제가 없을 듯했지만 막상 짐을 싸보니 7㎏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었다. 이러면 가서 젓가락 하나 더 사올 수 없겠다는 불안감에 수하물 한도를 늘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항공사 사이트에 증량을 신청하고 6만원 정도를 지불했다. 이제 짐에 있어선 부담 없겠군, 하고 안심하려다 혹시 몰라 체크해보니 이 옵션은 출국하는 편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가. 돌아오는 비행기에도 짐을 더 실으려면 같은 금액을 추가해야 했다. 20㎏으로 떠났다 7㎏으로 돌아올 리 만무했던 나는 결국 총 12만원을 지불하고 한도를 늘렸다. 이 금액이면 저가항공이 아니라 중가항공쯤 되는 것 아닌가, 나는 중얼거렸다.

출국일이 다가왔다. 방콕으로 날아가 경유 편으로 갈아타는 일정이었다. 방콕에는 2시간가량 머무는 스케줄이었는데 환승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인천발 비행기가 무작정 지연되었다는 사실이다. ‘준비 중이니 기다려 달라’는 방송을 여러 차례 들으며 나는 게이트 앞에서 한 시간을 기다렸다. 시간이 갈수록 연결 편을 놓칠까봐 초조해졌다. 낯선 공항에서 낯선 비행기로 갈아타야 하는데 1시간으로 될까? 50분으로 될까? 물론 연착으로 비행기를 놓친다면 응분의 보상이 있겠지만 여행 첫 단추를 그렇게 꿰고 싶은 여행자는 없을 것이다. 나의 불안감이 클라이맥스에 치솟았을 때 다행스럽게도 비행기는 이륙했고 비행은 순조로웠다. 물론 식음료 서비스는 제로였지만 저가항공에선 당연한 일이니 상관없었다. 경유도 무리 없이 이루어졌고 비행기를 놓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즐거운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는 날이었다. 이번에도 비행기는 지연되었지만 이미 겪어봤던 일이라 당황하진 않았다. 면세품을 들고 비행기에 탑승했는데 짐 선반은 그 어떤 테트리스의 달인도 연필 하나 찔러 넣을 수 없을 만치 꽉 차 있었다. 많은 사람이 통로에 캐리어를 두고 어찌할 바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유일한 문제는 탑승한 비행기가 엄청나게 추웠다는 사실이다. 천장에서 에어컨 바람이 이무기 입김처럼 나와서 옆사람 얼굴이 안 보일 지경이었다. 나는 마트에서 냉기폭포를 맞는 쌈 채소가 된 기분이었다. 담요를 청했더니 1만5000원에 구매하라는 말이 돌아왔고 나는 그저 웅크리고 떨며 발리의 햇살을 떠올렸다.

이것이 나의 저가항공 체험기였다. 누군가 나에게 ‘그래서 다시는 저가항공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하고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이렇다. ‘그럴 리가!’ 수하물 문제, 연착, 서비스 제로, 추위 등의 단점들이 있었지만 사실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저가’라는 것을. 항공료에 아낀 돈을 호텔에 투자할 수 있었기에 여행 기간 중엔 더없는 호사를 누렸다는 것을. 사실은 감사할 따름이다. 이런 저가항공사들이 얼마나 여행의 문턱을 낮춰놓았는가. 그 전까지 비행기를 타고 하는 여행이란 늘 눈 딱 감고 월급의 한 뭉텅이를 털어넣어야 할 수 있는 고급한 무엇이었는데 말이다.

유럽 어떤 항공사에서 입석 비행기를 개발 중이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엉덩이를 간신히 걸치고 다닥다닥 붙어 서서 가는 좌석의 이미지를 보았는데 이건 숫제 화물 대우였다. 좀 심한 것 아니야? 하고 생각했지만 막상 이 좌석이 도입되고, 금액이 사정없이 저렴하다면 나는 또 흔들릴 것이다. 두어 시간 서서 가는 거야 뭐 만원 전철에서 늘 하고 있지 않나? 하고 합리화할 것이다. 비행의 고통은 금방 잊히지만 통장 잔고는 영원히 남으니까 말이다. 싼 게 비지떡이라지만 비지떡도 맛있으니 말이다.

홍인혜 (시인·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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