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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홍 칼럼] 아베, 무엇을 위한 도발인가

입력 2019-08-05 04:05:02


1500년 넘은 한·일 관계史에 오점으로 기록될 일본의 만행
아베, 확인된 역사 수용하고 한국 국민에 사죄한 오부치 전 총리 본받았으면
문 대통령은 대일 포용정책 등 한반도 주변 외교에 치밀하게 나섰던 DJ로부터 배워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흡사 전쟁 전야 상황을 연상시킨다. 파국으로 치닫는 현재의 한·일 관계의 끝은 어디일까. 이러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파기와 외교관계 단절까지 가는 건 아닐까. ‘영원한 이웃’일 수밖에 없는 한·일 양국이 서로를 적대시해도 한반도 안보 환경은 괜찮은 것일까.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경제가 장기·구조적으로 저성장세를 이어가는 L자형에 빠지고, 서민들의 생활고는 더 심해지는 건 아닐까. 극단적인 상황을 포함해 이런저런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복잡한 요즘이다.

양국에서 나타나는 징후들은 예사롭지 않다. 특히 피해국인 우리나라가 그렇다.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 캠페인은 확산 일로다. 의류업체 ‘유니클로’와 아사히 맥주 등 일본 제품 불매운동은 일본산 원료를 사용하는 품목들까지 확산되는 추세다. 여행객 감소로 국내 항공사의 일본 노선이 축소되거나 중단됐고, 뱃길도 위태로운 상태다. 일본 영화 개봉은 연기됐고, 항일 영화는 흥행 중이다. 도심에서의 아베 규탄집회도 잇따르고 있다. 다음주 광복절엔 광화문광장에서 대규모 반일 집회가 열린다.

가해자인 아베 정권의 일본 국민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일 것 같다.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결정한 날 닛케이 평균주가는 전날보다 2.11%나 빠졌다. 올해 하락 폭 기준으로 두 번째로 컸다. 예전 같으면 한국 여행객들로 북적거리던 성수기인데도 오사카 등 유명 관광도시들은 썰렁한 분위기라고 한다. 매출액이 떨어진 숙박업체와 음식점 관계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파장은 더 확대될 전망이다. 아베 정권의 보복 조치로 한국 기업들이 타격을 받고 있으나 문재인정부가 일본의 화이트국가 배제 카드에 맞불을 놓으면 일본 기업들 역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폐기 가능성도 있다. 악화일로다. 1500년이 넘는 한·일 관계사(史)에서 임진왜란과 식민지 통치 기간을 제외하면 최악이다.

아베 총리 책임이 크다.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문재인정부의 군위안부 합의 파기에 맞서 일본의 힘을 보여줄 때라고 판단했을 수 있겠지만 수단이 틀렸다. 경제 압박으로 역사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동북아에서의 국익 확대라는 중장기적 목적도 엿보이나, 무리한 보복 조치를 환영할 나라는 거의 없다. 문 대통령 지적대로 “세계경제에 큰 피해를 끼치는 이기적인 민폐 행위”로 자국 국익도 해치는 자충수다. 무모한 폭주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아베에게 묻고 싶다.

아베가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를 본받았으면 한다. 오부치 전 총리는 1998년 10월 도쿄에서 김대중(DJ) 대통령과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한·일 외교사에서 가장 균형 잡힌 문서로 평가되는 이 선언에서 그는 “식민 지배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줬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한다”고 했다. 자민당이라는 일본 보수 주류 총리가 ‘한국’을 언급하며 한국 대통령 앞에서 사죄한 것이다. 바람직한 한·일 관계를 위해 아베가 취해야 할 자세다. 역사적으로 확인된 사실은 과감하게 수용하는 게 옳다. 공동선언 다시 읽기를 권한다.

당시 DJ는 ‘화해’로 화답했다. 과거사 문제에 관해 사과를 받아낸 뒤, 많은 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 대중문화 문호 개방을 선언하며 일본을 포용했다. 전후(戰後) 일본의 놀라운 경제발전 등을 언급하면서 양국이 협력하면 시너지가 얼마나 크겠냐고 강조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DJ로부터 배워야 할 점들이다.

무엇보다 DJ가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과의 외교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점을 되새겨야 한다. DJ는 치밀한 전략과 통찰력으로 미국, 일본, 중국, 북한과의 외교에 두루 공을 들였다. 그 결과 입김이 강해졌다. 그런데 지금 문재인정부의 외교는 시쳇말로 ‘동네북’ ‘샌드백’ 신세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북한에 걸핏하면 얻어맞는다. 미국은 물론 중국도 한국보다 일본을 중시하고, 미국과 찰떡공조를 자랑하는 일본은 한국보다 중국을 우선시하는 탓이다. 시중엔 ‘이러니 호날두마저 한국을 얕본다’는 우스개가 나돈다. 외교 전반을 재점검할 때다. 특히 대일 외교를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요인으로 인해 한·미·일과 한·중·일이라는 두 개의 삼각틀을 단단히 다지는 게 중요하다. 일본과의 원만한 관계가 필수다. 미국, 중국 나아가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DJ처럼 문재인정부도 일본의 변화된 모습을 올바르게 평가하는 등 햇볕정책, 포용정책을 폈어야 했다.

또 현재의 시련을 이겨내려면 국민통합이 절실하다. 친일파 프레임은 통합을 해친다. 더욱이 광복 70년이 훌쩍 넘었다. 친일파 프레임, 박물관에 보낼 때가 됐다.

김진홍 편집인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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