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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남도영] 다시 읽는 해방의 역사

입력 2019-08-06 04:05:02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38선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 결정됐다. 충칭의 독립운동가들도, 하와이의 독립운동가들도, 식민지하 지식인들도 38선이 어떻게 그어졌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 38선을 그은 미국 군인들도 자신들이 그은 38선이 어떤 비극을 가져올지 몰랐을 것이다. 1945년 8월 10일 일본은 항복을 요구하는 미국 영국 중국의 포츠담 선언을 수용하겠다고 미국에 알렸고, 미국은 곧바로 일본의 항복 조건을 담은 ‘일반명령 제1호’를 작성했다.

미국 전쟁성 작전국 전략정책단 정책과장인 찰스 본스틸 대령과 딘 러스크 대령은 지도를 보며 한반도에 38선을 그었다. 브루스 커밍스에 따르면 두 명의 미군 대령이 38선을 결정한 것은 30분 만이었다. 전쟁에 패배한 것은 일본이었지만, 둘로 갈라진 것은 조선이었다. 해방은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이 무엇인지, 갑자기 내려온 소련군은 무엇을 하려는 건지 조선은 알지 못했다. 독립된 나라를 준비하던 지사들은 좌절했다.

우리는 자꾸 분열했다. 건준(건국준비위원회)과 인공(조선인민공화국)은 한민당(한국민주당)을 친일파로 비난했다. 한민당은 건준과 인공을 친일파이자 공산주의자로 비난했다. 한민당 대표들은 1945년 미 군정장관을 만나 ‘인공은 일본과 협력한 한인집단’이라고 매도했다. 우익은 서울운동장에서, 좌익은 남산공원에서 각각 3·1절 기념식을 열었다. 미국 군정 관리는 “한국인은 식사하려고 두세 명만 모이면 정당을 만들었다”고 폄하했다(강준만·‘한국현대사산책’). 이승만은 “하나로 뭉치자”고 말했지만, 박헌영은 “그런 통합에는 친일파 민족 반역자들까지 들어가게 된다”고 반박했다. 남한에서 좌익과 우익이 분열하는 동안 스탈린에 낙점된 김일성은 북한의 지도자가 됐다.

우리의 말은 화려했으나, 내용이 없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6·25전쟁이 터지기 전 “우리는 북한의 실지를 회복할 수 있으며 북한의 우리 동포들은 우리들이 (김일성 일당을) 소탕할 것을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고, “우리는 3일 내로 평양을 점령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남쪽에서 말의 성찬이 벌어질 때 김일성은 모스크바를 세 번 방문했고, 중국을 한 번 방문했다. 전쟁을 허락받기 위해서였다.

6·25전쟁은 일본의 ‘승리’였다. 미군은 모든 전쟁 물자를 일본에서 조달했다. 전쟁으로 파괴됐던 일본의 생산시설은 대부분 복구됐다. 일본 경제는 6·25전쟁을 계기로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됐다. 일본의 양심적 역사학자 와다 하루키는 저서 ‘한국전쟁’에서 “일본은 한반도의 비극을 통해 이익을 얻어 전쟁 전의 경제 수준으로 부활할 수 있었고, 1955년부터의 고도 경제 성장의 기초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전쟁이 가져온 경제붐은 일본 국민의 의식을 경제 제일주의 방향으로 이끌었다”고 적었다.

해방된 지 74년, 6·25전쟁이 끝난 지 66년이 흘렀다. 그런데 과거사가 과거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한반도의 상황이 과거를 되새기라고 요구하고 있다. 미·중·러·일은 계산이 분주하다. 선량한 키다리 아저씨는 사라졌고, 거대한 시장이 되어준 중국은 더 이상 없다. 러시아는 폭격기를 독도 상공으로 보냈고, 일본은 발톱을 드러냈다. 33세의 김일성이 소련군을 등에 업고 북한을 단시간에 장악했던 것처럼 35세인 김정은은 핵무기와 외교술로 북한을 장악했다.

우리는 지금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미·일은 한국을 테이블에 올려두고 어떤 논의를 하고 있는지, 중·러는 무엇을 노리는지, 일본이 꺼낸 칼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지, 미·북은 한국을 제쳐두고 무엇을 논의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지금 말만 앞세우는 것은 아닐까. 외압에 맞서기보다는 서로를 향해 비난을 퍼붓는 상황은 암담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일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알아야 할 것과 이겨내야 할 것들이 많다.

남도영 디지털뉴스센터장 dy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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