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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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풍경화] 그렇게 우리는 살아간다

입력 2019-08-10 04:05:01


그 손님은 시시때때 자랑을 많이 한다. 주로 부모님 자랑을 많이 하고, 자신의 알록달록한 소장품을 자랑하기도 하며, 묻지도 않았는데 주말에 어디 갔는지 불쑥 자랑하는가 하면, 한번은 여자친구 자랑을 참기름 볶듯 고소하게 하기에 샘나 어쩔 줄 몰랐다. 순 ‘자랑쟁이’ 총각이다. 올봄 그 손님이 우리 편의점에 찾아와 “아저씨, 저 이제 초등학교 가요!” 하면서 한껏 우렁찬 목소리로 자랑했다. 이거 원, 초등학교 안 나온 사람 서러워 살겠나 싶을 정도로 야무진 자랑이었다. (그래, 나는 ‘국민학교’ 나왔다!) 기억한다. 그 손님이 우리 편의점에 처음 왔던 그날을. 손님은 분명 유모차에 앉은 채 편의점에 왔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공갈 젖꼭지도 물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손님이 젖꼭지와 유모차 떼고, 어린이집에 가고, 유치원 가고, 어느새 초등학교 들어간다 자랑하러 찾아온 것이다.

편의점의 시간은 손님과 함께 흐른다. 회사 건물 안에서 편의점을 하다 보니 대체로 고정된 손님을 상대하는 나로서는 더욱 그렇다. 함빡 정들었는데 계약직 기간이 끝나 작별을 고하러 찾아오는 안타까운 손님이 있고, 분명 엊그제까지 심부름하던 막내였는데 어느덧 후임이 생겨 “음료수 하나 골라봐!” 하며 어깨에 잔뜩 힘을 주는 풍경을 빙그레 미소 지으며 바라보는가 하면, 과장이 부장 되고 부장이 상무 되는 오르막길을 시간과 함께 멀리서 지켜보기도 하고, 누군가 보이지 않아 늘 같이 오던 손님에게 물으니 “지난달에 퇴사했어요” 하고 시무룩이 말하던 기억, 영영 가버릴 사람처럼 손 흔들며 해외 지사로 떠나더니 몇 년 뒤 돌아와 “아저씨, 아직도 그대로 계시네요” 하면서 해맑게 웃는 손님도 있다.

때로 의도치 않게 남들의 연애사를 엿보기도 한다. 분명 선배-후배 하던 사이였는데 소곤소곤 “자기야!”로 호칭이 바뀌더니 사내 몰래데이트하는 현장을 포착하기도 하고, 그렇게 애틋하다 다퉜는지 헤어졌는지 따로 시큰둥하게 찾아와 나도 뭔가 어색함을 느끼기도 하고(그럴 때 “남자친구는요?”라고 물어보는 것은 최악의 눈치 없는 행동이다), 그러다 어느 따스한 봄날 “우리 결혼했어요” 하며 찾아온 커플도 있다. 여자 손님의 배가 남산만 해지고, 선선한 가을 그들은 유모차를 함께 밀며 우리 편의점에 들어올 것이며, 유모차 타고 온 손님은 또 언젠가 “초등학교 들어가요” 자랑하며 막대사탕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겠지. 편의점을 운영하는 일이란 나는 늘 그 자리를 지키며 조용히 앉아, 변해가는 주위의 풍경을 바라보는 일이다. 사람과 함께 세월을 가늠하는 일이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간다. 나는 변한 것 하나 없고 이뤄놓은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남들은 변하고 쌓아가는 풍경 속에 때로 한숨 쉬고 가끔 서럽기도 하지만, 세월에 흔들리면서도 묵묵히 내 자리를 지켰다는 것―그것이 바로 내가 이뤄놓은 무엇임을 문득 깨달으며 오늘도 우리는 각자의 자리를 지킨다.

초등학교 입학하고 통 볼 수 없던 자랑쟁이 총각은 얼마 전 우리 편의점에 다시 얼굴을 내밀었다. “아저씨, 방학했어요!” 이거 원, 방학 없는 사람 서러워 살겠나 싶을 정도로 하늘을 날 듯한 자랑이었다. 그 총각이 중학교, 고등학교 올라가고, 수줍게 까까머리로 나타나 “군대 갑니다” 소식을 전하고, 알콩달콩 사랑을 나누고, 또다시 유모차 밀고 찾아와 자식 자랑, 아내 자랑 한껏 늘어놓는 그날까지, 먼 훗날의 언제까지라도, 나는 기꺼이 모든 자랑을 들어줄 용의가 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봉달호 작가·편의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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