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전체메뉴보기 검색

[김명호 칼럼] 미·중 환율전쟁은 미래전쟁의 서막

입력 2019-08-12 04:05:01


환율전쟁은 안보 문제까지도 포함된 중층적 성격… 미·중이 서로 앞날을 때리는 미래전쟁
일본이 우리의 약점 노린 경제전쟁도 동아시아 미래전쟁
국내용 정치와 선거에만 능한 여야 정치인들이 국가생존 전략 세우고 헤쳐나갈 수 있을까


결국 환율전쟁이 터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일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함으로써 방아쇠를 당겼다. 3일 뒤 중국 인민은행은 환율을 달러당 7.0039위안으로 고시했다. 이른바 포치(破七·위안화 환율이 달러당 7위안을 넘어서는 현상)를 용인한 것이다. 중국은 시장 상황을 반영한 것일 뿐이라 했지만,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은 분명하다. 다만 시장은 전문가들의 예상(7.0156위안)보다 위안화를 고평가해 고시한 것은 중국이 다소 여지를 둔 것이라고 해석했다.

전선의 범위와 강도가 문제지 미·중의 통상분쟁이 무역전쟁으로, 무역전쟁이 환율전쟁으로 비화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무역전쟁이 멀리서 서로 함포를 쏴대는 수준이라면 환율전쟁은 피아가 직접 맞붙는 전면전이다. 인명살상만 없지 나라 경제와 개인의 부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어쩌면 더 큰 공포를 준다.

트럼프가 환율전쟁 방아쇠를 당긴 건 경제·안보 측면에서 중국의 미래를 때리는 것이다. 단지 미국이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중국이 관세폭탄을 상쇄하기 위해 위안화를 절하하는 게 아니다. 미국은 전 세계 원자재·곡물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공장 중국의 물가상승 등 위안화 경제의 목을 죄려는 게다. 이 공격이 성공하면 중국의 안보정책도 치명적 영향을 받는다. 중국은 이번 세기 중반에 결국 미국을 앞설 것으로 보고 시간은 우리 편이라는 전략으로 버틴다. 미국은 군사력과 달러의 힘으로 어느 국가도 넘볼 수 없는 현실적인 힘과 지위를 갖고 있지만 정점은 지났다. 미국이 미래에 두려움을 느낄 만하다. 환율전쟁은 미래를 놓고 국가 생존전략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G2의 미래전쟁이다.

미국은 1985년 플라자 합의로 환율전쟁(사실은 일방적 요구)을 치러 성공한 적이 있다. 당시 쌍둥이(재정과 무역)적자, 전략방위구상(SDI)에 따른 엄청난 국방비, 신자유주의로 인한 부자 감세 등의 여파로 경제 여건이 좋지 않았고, 전후 세계 최강의 지위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그때 플라자 합의를 통해 일본을 손봤다.달러당 230엔대이던 환율을 1년 만에 150엔대까지 인위적으로 떨어뜨렸다. 이후 100엔 이하로 더 떨어졌다. 미국은 경제 위기 전 깔끔하게 탈출한다.

이번 환율전쟁은 안보 이슈까지 섞여 복합적이고 중층적이다. 트럼프가 파기한 중거리핵전력(INF)조약은 1987년 체결된 미·소 간 핵탄두 장착용 중·단거리 미사일 폐기 조약이다. 파기의 궁극적 목표는 중국이다. 미국이 이 조약으로 미사일 배치에 어려움을 겪는 동안 중국은 2000년 이후 중거리 미사일 둥펑 계열을 개발, 2015년에 사거리 3000~5000㎞ 둥펑26을 실전 배치했다. ‘괌 킬러’이자 미 항모의 중국 접근을 막을 수 있는 치명적 무기가 태평양을 향해 중국 동쪽 남쪽 해안에 수천기 배치됐다. 미국 안보 이익에는 치명타다. 환율전쟁은 안보까지 포함된 미·중의 중층적 미래전의 일단이다.

수출규제 보복으로 시작된 한·일 경제전쟁도 일본이 미래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최근 한국이 상당히 느슨해지긴 했지만, 잃어버린 20년을 계기로 1945년 이후 경제·안보의 수직적 관계에서 일본에 맞서려는 위치까지 접근했다. 일본이 용인할 리 없다. 일본 우익세력은 상당히 준비된 전략을 행동으로 옮기는 중이다. 한국 미래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첨단 소재·부품에 대한 일격, 안보 측면에서 한국을 좀 더 북한과 중국 쪽으로 밀어내고 상대적으로 미·일 안보동맹 공고화로 편 가르기, 한편으론 남북 간 끊임없는 이간질을 통한 남한 고립화 시도…. 한국 미래의 약한 고리를 깊이 찔러 더 이상 오르지 못하게 하려는 전략 아닌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아베 신조 총리가 미국에 적극 제안한 것이다. 미국·호주·일본·인도를 이어 중국의 일대일로를 강하게 압박하는 계획에 한국은 뺐다. 미국도 태평양군사령부를 인도·태평양사령부로 확대 개편했다. 일본의 동아시아 미래 구상일 것이다. 한·일 경제전쟁은 총성 없는 동아시아 미래전쟁의 서막이며, 일본 구상의 하부 단위 전투일 수 있다. 일본은 이를 미·중 미래전쟁 속 하위 개념의 국지전으로 몰고 가 완벽한 편 가르기를 도모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건 아닐까. 그게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가는 지름길일 수도 있다.

한국은 그 하부 단위 전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일과 애국심으로 무장했지만, 그 이상의 전략과 그림은 일단 보이지 않는다. 국정운영 세력은 주변 국가의 정책에 반응만 하는 수준이다. 과거전쟁에는 능숙할지 몰라도 미래전쟁 전략을 내보인 적이 없다. 과거전쟁은 국내용 정치와 선거에는 잘 통한다. 야당은 아직 과거 자체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뿐더러 아예 과거로 돌아가자는 움직임도 만만치 않다. 대통령과 여야가 국내용 정치만 할 줄 안다. 주변국은 국가 생존 위한 미래전쟁에 사활을 거는데, 과거전쟁만 하는 국내용 정치로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수석논설위원 mhkim@kmib.co.kr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