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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라이프] “한국인, 광천수에 익숙해져 청량감 있고 단맛 나는 물 좋아해”

입력 2019-08-18 20:10:02
워터 소믈리에 최고 권위자인 고재윤 경희대 외식경영학과 교수가 지난 5일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 자신의 연구실에서 수원지가 서로 다른 생수를 유리잔에 따른 뒤 시음하고 있다. 최종학 선임기자
 
고재윤 교수 책장에 세계 각국의 생수들이 겹겹이 들어 찬 모습. 마트에서 500원에 살 수 있는 제품부터 한 병 가격이 10만원에 육박하는 생수까지 다양하다. 최종학 선임기자


뜨겁고 습하던 지난 5일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 호텔관광대학 내 한 연구실. 한쪽 벽면을 메운 책장에는 생수병 100여개가 촘촘히 들어서 있었다. 작은 탁자 위에 다양한 크기의 생수병과 와인잔이 꺼내져 있었고, 중년의 한 남성이 눈을 반짝이며 섬세하게 물을 따르고 있었다. 물 한잔 마시는 게 이렇게 공들일 일인가 생각될 정도로 진지하게 물을 대하는 이는 고재윤 경희대 외식경영학과 교수다. 고 교수는 소믈리에 겸 워터 소믈리에로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워터 소믈리에라니, 생소하다. 워터 소믈리에는 물의 종류와 특성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 물의 맛을 분석해내고 필요와 상황에 따라 추천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2000년대 초반 유럽과 미국에서 만들어진 이 직종은 우리나라에서 2011년 ‘한국워터소믈리에협회’가 만들어지면서부터 제대로 육성되기 시작했다. 워터 소믈리에는 2014년 교육부가 선정한 ‘유망직업’으로 꼽히기도 했다. 워터 소믈리에 분야에서 최고 권위자인 고 교수에게서 ‘맛있는 물 고르는 비법’을 들어봤다.

“물의 맛을 이야기할 정도라니 시대가 많이 변했죠. 아주 예전에는 물의 중요성을 못 느꼈어요. 산업화로 환경오염이 생기면서 ‘깨끗하고 순수한 물’에 대한 필요성이 생겨났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수돗물이에요. 수인병을 없애준, 그래서 인류의 수명을 연장시켜준 게 바로 수돗물입니다. 소득수준이 올라가면서 ‘건강한 물’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습니다. 미네랄 함량을 따지고 건강에 도움이 될 만한 물을 찾는 거죠. 최근에는 여기에 더해 ‘맛있는 물’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정수기를 쓰고, 편의점에서 생수를 사마시는 일이 지금은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모습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생수 소비의 역사는 그다지 길지 않다. 1995년 ‘먹는물 관리법’이 제정돼 생수 시판이 가능해졌는데, 그 무렵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대동강물을 떠다 파는 봉이 김선달이 판을 치게 생겼다며 화를 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 20여년 동안 생수 시장은 계속 성장했고,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올해 생수 시장 규모는 1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고 교수 말처럼 ‘맛있는 물’로 관심사가 확대되면서 생수 시장도 다양해지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는 120여개의 생수를 파는 워터바가 있는데 최근 고객 수가 크게 늘고 있는 추세다.

그런데 정말 물맛은 ‘거기서 거기’가 아니란 말인가. 고 교수는 물의 성질에 따라 어떻게 맛이 다른지를 즉석에서 확인시켜줬다. 물맛의 차이를 직접 느껴보고 싶다면 이 방법을 따르면 되겠다.

고 교수는 먼저 정수기물, 시중에서 많이 판매되는 생수, 워터바 등에서 판매되는 슬로베니아의 빙하수를 와인잔에 아주 조금 따랐다. 와인잔 하단에 살짝 흘려 넣은 정도로 물을 담은 다음 화이트 와인을 따른 뒤 맛을 봤다. 세 종류의 물이 조금 첨가된 하나의 와인, 맛은 놀랍도록 전혀 달랐다. 물이 와인을 밋밋하게 만들 수도 있고 향과 풍미를 풍부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게 그 자리에서 확인됐다.

“물맛에 대해 무색, 무미, 무취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아요. 색은 없지만 수원지나 물의 특성에 따라 향도 있고 맛도 제각각입니다. 좋은 물 중에는 꽃향이 나는 것도 있고, 미네랄의 함량에 따라 짠맛 신맛 단맛 금속맛처럼 다양한 맛이 나죠. 그렇게 맛과 향으로 물에 대한 취향이 나뉠 수 있습니다.”

고 교수는 여러 종류의 물을 꺼내 시음을 권하면서 물맛의 차이를 설명했다. 빙하수는 묵직함이 느껴졌고 우리나라 생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광천수는 청량감이 좋았다. 고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광천수에 익숙해져서 청량감이 있고 단맛이 나는 물을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정수기물은 어떨까. 정수기물은 수돗물을 다시 한 번 역삼투압으로 거른 물이다보니 미네랄이 적다. 미네랄이 풍부한 물을 좋아하거나 그런 물을 마셔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정수기물이 맞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인의 식생활을 고려하면 정수기물도 괜찮다는 게 고 교수의 평가다. 고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채소나 해조류를 많이 먹기 때문에 미네랄이 풍부하지 않은 물을 마셔도 건강에 지장이 없다. 하지만 육류 위주의 식생활을 한다면 미네랄이 풍부한 물, 자연 탄산수 등으로 미네랄을 보충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소화기관이 발달되지 않은 영유아에게는 미네랄이 적은 광천수가 적합하고, 생수가 없다면 정수기 물도 권한다. 영유아는 미네랄이 너무 많은 물을 마시면 오히려 탈이 날 수 있다고 귀띔했다.

고 교수의 생수 고르는 법은 어떨까. “언제 생산됐는지, 칼슘과 마그네슘의 얼마나 들어있는지, 수원지는 어딘지, 그리고 가격을 봅니다. 다른 조건이 비슷하면 싼 것을 마십니다(웃음). 수원지는 가급적 산에 있는 걸 택하고요. 민가가 적고 사람이 적은 곳의 물이 더 깨끗할 테니까요. 가장 신선하고 깨끗한 물은 해양심층수, 용암해수, 염지하수 이런 종류의 물입니다. 바다에서 강으로 막 유입된 물이요. 다양한 물맛을 보고 더 많은 사람들이 물을 즐기면 좋겠습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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