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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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홍인혜] 바다는 나로 하여금

입력 2019-09-20 04:05:01


얼마 전 제주도에서 바다 수영을 했다. 제주에 살며 프리다이빙을 하는 친구와 함께였다. 우리는 스노클 장비를 착용하고 해변에서 꽤 먼바다까지 헤엄쳐 들어갔다. 바다는 육지보다 한 계절이 더디다더니 9월의 바다는 온화했다. 해수의 뭉근한 온기가 나의 몸을 감싸 근육마다 깃든 긴장을 풀어지게 했다. 그제야 바닷속이 제대로 보였다. 물고기들이 현무암 틈바구니에서 우르르 헤엄쳐 나오고 있었다. 친구는 새로운 물고기가 지나갈 때마다 저것은 학꽁치, 저것은 전갱이, 저것은 줄돔 하고 친절히 일러줬다. 횟집 메뉴판에서나 보던 이름들을 줄줄 읊는 그는 마치 떠다니는 생물도감 같았다.

나는 친구의 풍부한 지식과 더불어 그 다양한 어종에 놀라고 있었다. 스노클을 꽉 물어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입을 떡 벌렸을 것이다. 살며 스노클링을 처음 해보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토록 놀란 이유는 그 많은 해양 생물들이 내 삶의 터전과 무척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 머릿속 바닷물고기들은 여름 휴가차 떠난 먼 대양 복판에서 만나본 흰동가리나 블루탱 혹은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봐온 청새치나 범고래 같은 이국적인 녀석들이었다. 한때 필시 행락객들로 뒤덮였을 평범한 해수욕장에서 출발해 내 빈 몸뚱이로 헤엄쳐 들어온 이 가까운 바다에서 이렇게 많은 물고기들을 만날 거라곤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마치 먼 나라 휴양지에 온 것 같다, 하고 사대주의적 감상에 빠져들 무렵 바위틈에서 익숙한 브랜드의 생수병이 보였다. 내가 즐겨 먹곤 하는 과자 껍데기가 해파리인 양 일렁이는 것도 보였다. 그 친숙한 이름과 로고들은 여기가 우리 바다라는 표식 같았다. 평소 내가 먹고 마시던 것의 부산물들이 여기까지 흘러들어와 있었다. 사실 함께 수영하러 온 친구는 다이버로서 이런 광경을 수도 없이 봐왔을 것이다. 본인의 SNS에 해양 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이야기한 것도 여러 차례다. 바다 쓰레기를 잔뜩 주워왔다는 사진을 올린 적도 많다. 나는 서울에서 그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이렇게 생각해왔다. ‘누가 몰지각하게 바다에 쓰레기를 버리는 거야?’ 하지만 친구는 말했다. ‘이것들은 누군가가 바다에 버린 쓰레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무분별하게 만들어낸 쓰레기들이 비바람에 쓸려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나는 그 말에 돌하르방으로 머리를 맞은 듯 놀랐다. 환경 문제에 마음을 쓴답시고 분리수거를 꼼꼼히 하며 내 몫은 다했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에서 뱃속에 플라스틱이 가득한 채 죽은 물고기나 목에 페트병 고리가 걸려 죽은 바닷새를 보면서도 ‘누가 바다에 저런 걸 버려가지고…’ 하며 상상 속 악당을 탓했다. 적어도 나는 저런 일에 분노를 느끼고 페트병의 비닐까지 떼어 따로 버리는 ‘좋은 사람’이니까.

하지만 범인은 바로 나였다. 저 아름다운 바닷속 풍경 곳곳에 도사린 이물질들은 다 내가 만든 것이었다. 물을 따라 마시기 귀찮다고 500㎖ 생수를 대량으로 쌓아두고 마시는 내가, 편의점에서 ‘봉투 드릴까요’ 하면 생각 없이 ‘네’ 하고 말하는 내가, 텀블러가 계절별로 있으면서도 게을러서 일회용 컵에 음료를 마시는 내가 생산해낸 것들이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바다에 직접 쓰레기를 내버린 게 아니라는 사실만으로 모든 혐의에서 벗어났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작은 도덕을 지키면서 큰 악행을 외면하고 있었다.

이 충격적인 깨달음을 통해 우습지만 나는 ‘체험 학습’의 위대함을 알았다. 생태 다큐멘터리를 수백 시간 보는 것보다 바다에 한 번 나가서, 그곳이 실제 누군가가 살고 있는 터전이라는 것을 느끼고, 거기에 도사린 쓰레기들이 얼마나 흉한지를 보는 것이 삶의 자세를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어제 배에 얹고 오물거리던 과자 봉투가 옥빛 바다 저 아래에서 흉물스럽게 일렁이는 것을 두 눈으로 본다면 누구라도 나와 같은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바로 나처럼 오자마자 장바구니를 현관에 걸어두고, 생분해 비닐봉지나 실리콘 빨대를 검색하고, 텀블러를 가방에 넣어둘 것이다.

지금까지 인류가 쓴 모든 플라스틱 칫솔들이 아직 이 지구에 남아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당신과 내가 아기 때부터 지금까지 써온 그 모든 형형색색의 매끈한 물질들이 전부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그 생각을 하면 눈앞이 아찔해진다.

홍인혜(시인·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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