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전체메뉴보기 검색

[길 위에서] ‘배 선교사’의 순교를 기리며…

입력 2019-09-25 00:05:01


지난 15일은 배윤재 선교사의 10주기였다. 배 선교사는 2009년 9월 15일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 산악지대의 한 저수지 근처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미혼 선교사로서 파리의 무슬림 빈민 여성을 도우며 복음을 전하던 그였다. 배 선교사는 장로회신학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1997년부터 프랑스에서 사역하다 99년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프랑스 선교사로 파송 받았다. 경기도 용인 이룸교회에서도 사역했다. 이룸교회 담임 배성식 목사가 오빠다.

최근 배 목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교회가 9월 15일을 기해 추모예배를 드리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동생이 정확히 언제 살해됐는지 모릅니다. 현지 경찰은 9월 13일과 15일 사이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배 선교사 추모일을 시신이 발견된 15일로 정하고 매년 그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그것도 한국인 선교사가 선교 활동을 하다 죽음에 이른 것은 초유의 일이었다. 이 사건은 국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끔찍한 일이 있은 지 10년이 흘렀건만 배 선교사가 왜 죽임을 당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다만 프랑스의 무슬림빈민구호단체와 함께 일하던 배 선교사가 극단주의 단체로부터 몇 차례 협박받은 적이 있었다는 얘기만 전해진다. 배 선교사를 살해한 혐의로 경찰 추적을 받던 용의자마저 주검으로 발견되면서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배 목사는 동생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움을 갖고 있었다. 빈궁하게 외지 생활을 하면서도 무슬림 여성을 돕다 영영 떠난 동생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자책과, 현재 누리고 있는 삶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배 목사는 “외롭게 살다간 배 선교사를 보면서 힘들게 목회하는 개척교회 목회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서도 묵묵히 사역을 감당하는 선교사들이 생각났다”며 “이분들이 장차 받을 상급은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 선교사가 순교하기 2년 전에는 다른 배 선교사의 순교가 있었다. 2007년 7월 19일 아프가니스탄에서 교육 및 의료봉사활동을 펼치던 샘물교회 봉사단원 23명이 카불에서 칸다하르로 이동하던 중 탈레반 무장세력에 의해 납치됐다. 인솔자였던 배형규 목사가 심성민씨와 함께 피랍 중 살해됐다.

지난달 말 캐나다 캘거리에서는 제25회 세계오순절대회가 열렸다. 교회 시작의 계기가 됐던 오순절 사건이 오늘의 교회에도 회복돼야 한다는 내용의 강의들이 잇따랐다. 그중 인상적이었던 메시지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조지 마흘로보(사도적믿음선교남아공지부) 목사의 설교였다.

그는 “교회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항상 사도행전 2장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성령의 능력을 경험한 신자들은 하나님의 군사로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복음은 전파하는 것이지 소비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 전파는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복음은 소비가 아니라 확산돼야 한다는 말이 귀를 때렸다. 남아공 목사님의 이 한마디가 오늘의 한국교회에도 절실히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 120문도에게 임한 성령의 역사는 곧 선교의 시작이었다. 왜 하나님은 그날 각 사람에게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형상으로 성령을 주시면서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각 지역의 방언을 주셨을까. 이는 온 세계로 나가 복음을 전하라는 표시가 아니었을까.

한국교회가 위기라는 진단은 새로운 게 아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교회는 위기의 원인을 주로 외부에서 찾았다. 최근엔 더 심해지고 있다. 그러나 냉철히 생각해보자. 구약시대 이스라엘이 일종의 교회 공동체였다면 그들이 멸망한 이유는 아시리아와 바벨론 때문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백성임을 망각하고 우상숭배를 일삼은, 역겨운 죄 때문이었다. 주변국들은 그저 하나님의 심판 도구로 사용됐을 뿐이다. 예레미야 에스겔 등 구약 예언자들은 이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교단 총회가 한창이다. 부디 교회와 지도자 자신을 돌아보는 통찰의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위임명령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면 더욱 좋겠다. ‘배 선교사들’이 잊혀서는 안 된다.

신상목 종교부 차장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