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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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배승민] 하루하루의 꽃

입력 2019-10-03 12:05:01


두 손으로 들기조차 버거운 많은 꽃다발을 받았다. 간신히 집에 도착해서 식탁 위에 우르르 내려놓으니 이 많은 것을 어쩐다 싶다. 재주는 없지만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겠어서, 잠시 고심하다 겹겹이 쌓인 포장을 풀고 화병으로 쓸 만한 빈병들을 모아 정리를 시작했다. 어느새 엄청나게 쌓인 색색의 포장지와 리본에, 이 고운 것들을 한 번만 쓰고 버리다니 얼마나 낭비인가 싶어 잠시 기분이 불편해졌다. 예쁜 원래 모습 그대로 자연에 두었다면 더 좋았을 꽃들을 꺾어 이리 장식하는 것 또한 우리네 불필요한 욕심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자 서투른 손은 더 미적거려졌다. 그래도 낑낑거리며 정리하고 보니 비록 서툴게 꽂은 모양새일지언정 알록달록한 자연의 색깔은 불과 얼마 전까지 무미건조했던 집을 순식간에 화사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가족들도, 찾아오는 분들도 한동안 꽃 이야기에 살짝 들떠 더 즐거운 시간을 나누니 같은 집도 영 달라보였다.

학회나 출장으로 잠시 외국에 머무를 때마다 도심이건 시골이건 시장마다 가득한 꽃과 주변 사람들의 활짝 핀 표정이 시선을 끈다. 아무리 잘 관리해도 짧게는 며칠에서 길어봤자 몇 주 내외로 시들어 귀찮게 손이 갈 텐데 하는 텁텁한 생각은 나 외에는 아무도 하지 않는 듯하다. 상기된 표정으로 꽃을 사는 젊은이들도, 나이 들어 손이 곱고 걸음이 불편한 노인이 조심조심 골라 드는 모습도 제각각 아름답다. 꽃 내음과 자태에 취한 이들을 지나가며, 이방인인 나는 꽃보다 그런 그들의 모습이 부러워 눈을 흘끔인다. 아무도 안 보아주다 사라지는 것보다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니, 꽃 입장도 썩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과 함께.

아직 더운 날씨에 하루하루 화병속 꽃잎이 시드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나는 어느새 퇴근하자마자 물부터 갈기 시작한다. 하루 사이 시든 잎을 골라내고 어제보다 조금 더 핀 봉우리를 칭찬하며 하나하나 살펴보는 동안, 순간이지만 종일 머릿속에 가득하던 시끄러운 생각들을 잊고 이 소중한 기분을 꽃과 함께 선물해 준 아름다운 이들을 잠시나마 떠올린다. 하루하루 나도 이들처럼 늙어가지만, 이렇게 흘러가는 순간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배승민 의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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