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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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김의경] 상인들의 가을

입력 2019-10-06 12:10:01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가게 앞에 널어놓은 커피찌꺼기 냄새가 기분 좋게 번졌다. 필요한 분 가져가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고 행인들이 모여들어 커피찌꺼기를 옆에 놓인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담고 있었다. 그걸 어디에 쓰느냐고 묻자 한 할머니가 이걸 냉장고에 넣으면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할머니는 내 것도 한 통 담아 손에 들려주었다. 나는 그것을 손에 들고 카페 안으로 들어가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카페 주인이 말했다. “뜨거운 걸로 드릴까요? 찬 걸로 드릴까요? 이번 주부터 아이스 아메리카노보다 뜨거운 아메리카노 주문이 더 많이 들어와서요.” 매장을 둘러보니 정말로 대부분의 손님이 얼음이 든 머그컵이 아니라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는 머그컵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럼 저도 뜨거운 걸로 주세요.” 카페 주인이 웃으며 말했다. “일 년 내내 이 안에 있으니까 어느 날 갑자기 아이스커피가 아니라 뜨거운 커피 주문이 우수수 들어오면 이제 완연한 가을이구나 해요.” 올 가을, 처음으로 마시는 뜨거운 커피였다.

카페에서 나와 이런저런 가게를 둘러보며 상인들이 완연한 가을을 실감하는 때는 제각기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어렸을 때 옷 장사를 한 엄마 덕분에 가게에 가을색 옷이 수북이 쌓이면 이제 정말 가을이구나 했다. 나에게 가을은 향보다는 색과 촉감으로 먼저 다가왔다. 가을이면 옷가게를 가득 메우는 카키색, 낙타색, 와인색, 갈색과 같은 옷들의 색깔이 내가 생각하는 가을색이었다. 까슬까슬한 마 소재의 치마와 바지, 시원한 민소매 티셔츠와 같은 여름 옷을 내리고 아크릴, 울, 스웨이드 소재의 가을색 카디건, 니트 티를 매장 벽에 걸면 기분이 좋았다.

엄마를 도와 몇 벌의 옷을 마네킹에게 입히고 남은 것은 종류별로 나란히 쌓아 올린 뒤 엄마가 타준 인스턴트커피를 마시면 그제야 비로소 이제 완연한 가을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다른 계절로 들어왔다는 것을 그제야 온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김의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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