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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젊은 벗들에게

입력 2020-01-29 00:05:01


대학 입시를 앞둔 조카 앞에서 올해 설에도 묻지 못했다. ‘학교생활은 어떠니.’ 이건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최근 조사한 ‘설날에 듣기 싫은 말’ 가운데 7위다. 자연스럽게 나의 학창시절 이야기부터 풀어보려 했으나 이마저도 맘에 걸렸다. ‘나 때는 말이다’ 역시 듣기 싫은 말 3위였다. 명절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반드시 피해야 할 질문 1위는 ‘앞으로 계획이 뭐니’였다. 애먼 TV 리모컨만 무시로 돌려야 했다.

속으로 끙끙대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 너 잘되라고 하려는 말인데.’ 아차차. 이것도 듣기 싫은 말 4위다. 이때 아직 초등학생인 또 다른 조카와 아들이 공을 들고 외쳤다. “외삼촌, 농구해요.” 밖으로 나가 몸이 부서져라 코트를 오갔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 하루라도 더 놀아주는 것, 그게 명절에 가족과 함께해야 할 일이었다.

N포세대 헬조선 번아웃 미생 이생망…. 얼마 전 충남 공주풀꽃문학관에서 만난 나태주(75) 시인은 젊은 세대 사이에 쓰는 이런 유행어들을 나열하며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노년의 시인은 “한결같이 부정적 내용이고 살아가는 일이 고달파서 생긴 용어들”이라며 “그 말 속에서 젊은이들의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해 마음이 참 편치 않다”고 했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풍요가 넘쳐나는 시절인데 남들 누리는 것이 자기만 비껴간다고 생각하면 괴로운 일이다. 취업이 어려우니 연애가 어렵고, 그래서 결혼도 출산도 집 장만도 포기하고야 만다는 세대에게 나 시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랑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서로 악수를 청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잡고 먼 길을 떠나보자. 판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깰 것이 있으면 깨고 뒤집을 것이 있으면 뒤집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해보는 것이다. 어디선가 새롭게 젊고 씩씩한 한 사람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젊은 독자들의 지지를 받는 나 시인은 윗세대에게도 부탁했다. 아이들을 기를 때 ‘낳아주고 길러주고 가르쳐주고’만 있는 줄 알았는데, 거기에 더해 ‘기다려주고 참아주고 져주고’가 더 있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고 했다. 그래야 당신이 세상에 없는 날 아이들이 당신을 ‘좋은 부모는 아니지만, 보통의 부모 정도로 생각해 줄 것’이라고 했다.

국민일보 종교국은 다음 달 20일 서울 새문안교회에서 청년응원 프로젝트 ‘갓플렉스(God Flex)’를 진행한다. ‘플렉스’는 힙합 용어로 뭔가를 내세우며 자랑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자랑하며 기독교가 강조하는 사랑 화해 용서 등의 메시지를 젊은 벗들과 함께 마음껏 발산하자는 의미이다. 갓플렉스에 초청돼 공연을 펼칠 래퍼 비와이(BewhY)는 히트곡 ‘더 타임 고즈 온(The Time Goes On)’에서 이렇게 읊조린다.

‘밑바닥 이게 나의 현 주소/ 두려움이 배로 생겨도 절대 난/ 멈춘 적 없이 달리고 있는 중/ 다른 이들이 만들어 놓은 길이 아닌/ 내가 내 길을 만들어 가기에/ 내 미랜 희미하지만 이미 알지/ 내 시작점과 정반대라는 걸/ 세상이 할 수 없다는 걸 난 이렇게 불러 가능성.’

대부분의 경우 우린 답을 알고 있다. 젊은 벗들에게 해줄 금언들도 차고 넘친다. 문제는 실행이다. 누가복음 10장에서 한 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묻는다.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하였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고 있느냐.”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하였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였습니다.” “네 대답이 옳다. 그대로 행하여라. 그리하면 살 것이다.”(새번역)

사춘기를 뚫고 손아래 동생들을 돌봐온 조카의 꿈을 응원하기 위해 적금에 가입했다. 대학에 입학하면 첫 등록금으로 지원할 계획을 세웠다. 네 대답은 옳고 그대로 행하란 말씀을 성경에서 보았다. 젊은 벗들을 응원하려면 말로는 부족해 보인다. 행동이 절실하다.

우성규 종교부 차장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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