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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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주의 알뜻 말뜻] 눈은 ‘스노’보다 눈답다

입력 2020-02-01 04:05:02


1930년대 문장가로 이름을 날린 소설가 이태준은 그의 수필집 ‘무서록’에서 시인 정지용의 말을 빌려 이런 글을 남겼다. ‘바다’라는 말이 일본어 ‘우미(ぅみ)’나 영어의 ‘씨(sea)’보다 더 크고 바다다운 것은 바다에 ‘아’라는 경탄음이 두 번이나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바다는 ‘아아’라는 경탄사를 절로 나오게 하는 것이라고.

오래전에 읽은 책이지만, 지금도 바다를 볼 때마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우리가 바다 앞에서 매번 ‘아아, 바다다!’라고 감탄하듯 산이나 강을 대할 때 ‘아아, 산이다’라거나 ‘아아, 강이다’라고는 잘 소리치지 않는 걸 보면, 바다가 바다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언어의 자의성을 벗어나 필연인 것만 같다.

이태준 식으로 말하자면, ‘눈’이라는 우리말은 한자의 ‘설(雪)’이나 영어의 ‘스노(snow)’보다 더 눈답다. ‘비 우(雨)’자에 기대어 만들어진 ‘雪’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의 형상을 상기시킬 뿐으로 그저 위에서 아래로 직활강하는 눈을 떠올린다. 난분분 난분분 공중에서 춤을 추는 눈의 서정성을 상기시키지 못한다. 더구나 소위 회의문자인 이 글자의 제자(製字) 원리를 따져보면,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빗자루로 쓸어낸다는 말이니, 먼 옛날 중국인들이 눈을 바라보는 마음이 마냥 즐겁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가 하면 스노(snow)는 그 냉정한 어감 때문에 이미 꽁꽁 얼어버린 느낌이 든다. 구름 안의 물 입자나 대기 중의 수증기가 얼어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는 얼음 결정이라는 기상학적 정의에 가장 합당한 말일지는 모르지만, ‘첫눈 내리는 날’이라든지 ‘눈이 오면 생각나는 사람’과 같은 말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발음이다.

내 느낌을 말하자면, 우리말 눈은 그 차가운 물리적 온도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따뜻하고 때로는 서늘하다.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서글프고 또 대개는 아름다운 그 모든 눈의 이미지를 다 끌어안는다. 그래서 눈이라는 말은 깊고 고요하다. 눈 올 때 올려다본 하늘의 적막감과 눈 그친 저녁의 까닭 모를 쓸쓸함까지 단음절의 말 한마디 속에 모두 녹아 있다. 눈(雪)이 눈(眼)과 동음인 것은, 눈이 내리는 걸 보고 있노라면 그렁그렁 맺히는 눈물이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우연의 일치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한없이 느리게, 한없이 고요하게 오는 눈. 내린다기보다는 공중을 서성이는 것처럼 보이는 눈. 하늘이 무너질 듯 한달음에 달려오는 눈. 아주 먼 곳에서 온 여행자처럼 지쳐 보이기도 하고, 마지막 산란을 끝마친 은어떼처럼 격렬하게 아름답기도 한 눈. 눈이 오는 날, 사위가 고요해지는 그 순간을 나는 사랑한다. 예전엔 아무도 밟지 않은 채 남아 있는 하얀 눈밭을 보면 달려가 제일 먼저 내 발자국을 찍고 싶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아무 생채기도 없이 순백으로 남아 있는 눈밭을 보는 것이 더 즐거워졌다. 바다에 풍덩 뛰어들기보다는 한걸음 앞에서 ‘아아’ 감탄사를 내뱉으며 그저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더 좋아진 것처럼.

올해는 좀처럼 눈이 오지 않는다. 서울은 물론이고, ‘눈 멀미’라는 말을 쓸 만큼 눈이 많던 강릉의 적설량도 0㎝를 넘을까 말까? 어쩌다 이런 겨울이 한 번쯤 있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이런 겨울이 매년 계속되거나 이런 추세가 아주 정착될까 봐 걱정이다. 1월이 다 가도록 눈을 보기 힘든 겨울, 눈 타령을 하면서 호주 산불이 영 남의 일만은 아닌 것이다.

최현주(카피라이터·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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