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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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겨울의 꿈

입력 2020-02-07 04:05:01


파삭한 이파리조차 남지 않은 메마른 나무들이 보인다. 황량한 칼바람에 옷깃을 힘껏 여미다 보면 과연 따스한 봄이, 연한 새싹이 이 얼어붙은 땅을 뚫고 나올 날이 올지 믿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아무리 겨울이 혹독해도 봄은 언제나 왔다는 것을. 심리적 고통은 지금의 괴로움이 끝없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악화된다. 어쩔 수 없이 상황이 나빠지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계절이 지나가듯, 하루하루 차이는 안 보여도 어느새 옷이 짤막해지는 아이의 키처럼 그 ‘순간’은 변해 간다. 극적인 불안에 쫓기는 공황 발작의 경우에도 시간이 지나면 몸이 점점 불안에 적응하면서, 당장 죽을 듯 파도마냥 덮쳐오던 증상도 썰물처럼 쓸려 간다.

순간 폭우가 쏟아지듯 불안에 압도될 때면 나는 ‘딱 1분 견디기’를 해 본다. 걱정과 불안으로 정신을 잃을 것만 같고, 도저히 몇 초도 못 견딜 것 같지만 의외로 ‘딱 1분만!’은 해볼 만하다. 이어폰을 끼고 좋아하는 음악 소절을 기다리거나, 지그시 눈을 감았다 뜨기 또는 얼굴을 따듯하게 손바닥으로 감싸며 잠시 어둠 속에 눈을 쉬게 하는 것도 괜찮다.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 팔까지 쭈욱 펴며 숨쉬기를 반복해 볼 수도 있다. 요즘 날씨에는 뜨끈한 물에 손이나 발을 담그거나 씻고, 피부의 결을 따라 주물러 주는 것도 좋다.

어떤 치료자는 좋아하는 아로마 향을 맡으며 천천히 숨을 내쉬기를 반복해보라고도 하고, 머리를 비우고 걷기를 추천하기도 한다. 그렇게 자기만의 방법으로 1분, 또 1분을 반복하다 보면 이대로 미칠 것 같던 감정에서 한 발 벗어나 억지로라도 숨이 내쉬어지는 순간이 온다. 최악을 상상하며 무너지는 것도 인간이지만, 보이지 않아도 희망을 찾고 혼자서는 무너져도 함께라면 다시 일어나 꿈을 꾸는 것 또한 인간의 놀라운 면이다. 국내외의 세계는 또 다른 불안에 휩싸여있고, 예년보다 혹독한 추위가 줄었다고는 하나 따듯한 곳에서 겨울을 나지 못하는 많은 이들에게는 여전히 가혹하고 냉정한 시기이다. 하지만 언제나 기어코 봄이 왔듯이, 불안의 날들로부터 나보다 더 취약한 이들과 아이들을 보듬으며 묵묵히 다가오는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싶다.

배승민 의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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