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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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이탈리아의 ‘사회적 거리’

입력 2020-03-16 04:10:01


영화사에서 위대한 걸작으로 꼽히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에는 인상적인 결혼식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돈 코를레오네(말런 브랜도)의 딸 결혼식에 모인 가족 친지 수십 명이 대저택 정원에서 흥겹게 춤을 춘다. 손과 허리를 잡고 볼 키스를 하고 유쾌한 대화를 나눈다. 친밀감 표현에 스스럼이 없다. 이들은 미국에서 건너온 이탈리아계 이민자 가족이다. 이 장면은 이탈리아인의 ‘사회적 거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가족과 이웃을 중시하는 이탈리아인의 공동체 문화는 잘 알려져 있다. 가까운 사이면 볼 키스는 예사이고, 떠들썩하게 오랜 시간 얘기를 나눈다. 혈연 지연 등에 얽힌 사적 모임도 많다. 이런 특성은 긍정적으로 여겨져왔다. 미국에서 이탈리아 이주민이 모여 사는 ‘로제토’ 마을은 심장병 사망자가 유난히 적어 연구 대상이 된 적도 있다. 의사들의 연구 결과 이들의 건강 비결은 주변 사람들과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이탈리아인의 문화에 있었다.

이탈리아가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 14일(현지시간) 현재 확진자 2만1000명, 사망자 1400명을 넘었다. 바이러스가 시작된 중국에 이어 확진자와 사망자 모두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이탈리아에 빗장을 걸어 잠갔다. 이 나라엔 모든 국민에게 이동 제한령이 내려졌다. 약국이나 식료품점 등을 제외한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다. 연간 3200만명의 관광객으로 북적이던 이탈리아에는 요즘 거리에 사람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밤늦게까지 북적이던 로마 트레비 분수 앞은 텅 비었다.

이탈리아의 유독 빠른 확산세에는 여러 분석이 나온다.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이 23%일 정도로 고령층이 많고, 의료진과 의료시설이 부족하다. 폐 질환에 치명적인 대기오염이 심한 도시가 많고, 발원지인 중국 우한과의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했던 이력도 꼽힌다. 여기에 또 한 가지. 신체 접촉을 좋아하고, 대화가 많은 사교적인 문화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탈리아 입장에선 이런 분석이 마뜩잖을 수도 있겠다.

한승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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