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친구들과 달리며 축구를 하는 꿈을 꿨다. 꿈에서 깨면 현실을 마주했다.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스스로를 다잡으며 ‘그래, 할 수 있어’를 되뇌었다.
한국성서대학교 컴퓨터소프트웨어학과에 재학 중인 김선웅(23)씨는 ‘할 수 있다’는 다짐을 현실로 보여줬다. 김씨는 대학 4년 평균 학점 ‘A-’를 받고 내년 2월 졸업한다.
학교 관계자는 김씨를 “학우들에게 도전의식을 주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이런 평가에는 이유가 있다. 신장 180㎝, 몸무게 85㎏의 김씨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건 손가락뿐인데 그마저도 힘이 없어 종이 한 장 넘기기 어렵다. 그는 진행성 선천적 장애를 앓는 중증장애인이다. 세 살 무렵 장염과 감기로 병원에 갔다가 우연히 알게 됐다. 진단명은 근위영양증. 시간이 흐를수록 신체는 기능을 잃어갔다.
김씨는 16일 전화 인터뷰에서 “친구들이랑 축구하고 걸어 다녔던 기억이 난다”면서 “그러다 친구들이 하는 걸 함께하지 못하게 됐고 초등학교 4학년 때 두 다리와 팔이 기능을 상실했다. 지금 제 팔과 다리는 전동휠체어”라고 말했다.
자신의 병을 받아들이기 힘들 때 힘을 준 사람은 어머니 조애자씨와 교회 친구였다. 모태신앙인 김씨는 어머니를 따라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서울 중랑구 동일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긍정적인 어머니 덕에 장애를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교회 성경학교 같은 반이었던 한 친구는 조건 없이 저를 도왔고 지금도 든든한 버팀목이에요.”
무엇보다 큰 힘이 된 건 신앙이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하나님과 대화했어요. 어려운 일이 해결되거나 기쁜 일이 생겼을 때도 감사 기도를 드렸어요. 몇 년 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척추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실에 누워있는데 천장에 있던 성경 말씀을 잊을 수 없어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었어요.”
하나님과 어머니, 교회 친구에 의지하며 김씨는 대학 입학에 도전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도 기독교 대학으로 김씨의 집과 멀지 않은 성서대 입학을 권유했다.
“가깝기도 했고 캠퍼스에 언덕이 없어 이동하기 편했어요. 입학 첫날부터 ‘내 학교다’ 싶었죠. 컴퓨터를 다룰 수 있는 전공을 선택했어요.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면 저도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교재는 PC 모니터로 볼 수 있게 어머니와 장애학생지원센터 직원이 일일이 스캔해 PDF파일로 변환해 줬다. 교수는 수업 관련 연구자료를 모아서 제공했다. 과제는 모니터에 띄운 화상키보드를 마우스로 클릭하며 작성했다. 그렇게 4년간 받은 평균 학점이 3.76이었다. 2학년 1학기 땐 4.3점 만점에 4.2점을 받아 교내장학생으로 선정됐다.
졸업 작품으로는 ‘음성인식 PC 프로그램’을 제출했다. 그는 “휴대폰이나 TV에 탑재된 음성인식 기술을 컴퓨터에 적용했다”면서 “저처럼 키보드나 마우스 사용이 어려운 분도 전원만 켜면 음성으로 인터넷, 유튜브 등을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꿈은 장애인들이 사회에 진출하는 데 도움을 주는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되는 것이다.
“‘단 1분이라도 내 두 다리로 동네를 걸어 다니고 싶다’는 마음이 지금도 있습니다. 신체의 한계를 받아들이려는 저와 운명을 거부하고픈 저 사이에서 부딪히기도 해요. 나의 연약함을 아시고 여기까지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다가올 새날에도 한 걸음씩 전진해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