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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목회는 용서의 길을 걸어가는 것

입력 2021-05-11 03:05:04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조그마한 틈 하나가 큰 성벽을 무너뜨릴 수 있다. 기계의 작은 결함 하나가 큰 프로젝트를 망치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 삶에도 작은 것을 간과했을 때 일어나는 문제들이 있다.

묻어두고 넘어간 마음의 상처, 대수롭지 않게 여긴 쓴 뿌리들이 우리 삶을 무너뜨릴 수 있다. 마음에 뿌려진 잘못된 감정의 파편 하나가 하나님의 은혜의 강물을 막아버릴 수 있다. 그중에서도 삶을 무너뜨리는 시초가 됨에도 불구하고 그냥 간직하고 살아가는 마음이 있다. 바로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이다.

용서하며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용서하기를 외면하며, 그 마음에서 비롯된 상처와 미움, 증오와 복수심 같은 잘못된 감정을 붙잡고 살아간다. 복수의 칼을 가는 어리석음을 범하기도 한다.

목회 현장에는 정말 용서하기 쉽지 않을 만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 역설적으로 그러므로 더욱 용서의 목회가 필요하다.

용서가 왜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그것은 용서가 인간의 본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담과 이브는 죄를 지은 후 용서하기보다는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우리 안에는 용서의 마음보다는 책임을 따지고 누군가를 비난하려는 마음이 먼저 생긴다.

용서는 불공평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상대방이 잘못을 깨닫지 못하거나 오히려 잘못을 덮어씌우려고 하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사도 바울은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고 말한다.

용서란 단순히 상대방의 잘못을 참아 내거나 상처받은 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용서란 자신을 속박하고 있던 잘못된 감정이나 상처로부터 자신을 해방하는 일이다. 용서란 용서의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용서는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먼저 행해야 할 가치 있는 일임이 틀림없다.

우리는 나 자신을 위해 용서해야 한다. 신약에서 사용되는 용서라는 단어는 본래 ‘자신을 풀어주다. 자유롭게 하다’라는 뜻이다. 존경받는 신학 교수이자, 베스트 셀러 작가인 루이스 스미디스는 이런 말을 했다.

“용서로 치유 받는 사람은 바로 용서하는 자이다. 진실된 용서는 포로에게 자유를 준다. 그런데 포로에게 자유를 주고 나면 자기가 풀어준 포로가 바로 자신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또한 용서받을 그 사람을 위해 용서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거룩한 의무 가운데 하나는 이웃을 돌보는 것이다. 필립 얀시는 용서한다는 것은 잘못을 범한 사람에게서 그 잘못을 도려내는 것과 같다고 했다.

용서는 상대방을 가해자로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도 피해자의 한 사람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전에는 그 사람이 나에게 피해를 준 자로만 여겼는데 이제는 그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래서 용서는 이웃의 삶을 변화시키는 길이며, 원수를 친구로 만드는 최고의 방법이다. 용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독생자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신 하나님의 뜻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웃을 향한 진정한 용서를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않고서는 결코 이웃을 용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웃을 사랑하려면 자기 자신을 먼저 진정으로 사랑해야 한다. 목회자로서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그런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용서해야 한다. 이렇게 주님의 발 앞에 자신의 모습을 내려놓을 때 건강한 목회가 가능하다.

주님의 십자가는 주위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목회자는 회개하고 용서함 받는 길 대신,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해 목숨을 버린 가룟 유다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목회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친히 찾아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주님의 그 십자가 사랑, 용서의 사랑을 붙드는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과 이웃을 용서하며 걸어가는 길이다.

이성철 미국 달라스 중앙연합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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