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MC사업본부장 발령을 받고 첫 출근하던 날. 나의 하루는 예정된 시간보다 빨리 시작됐다. 부담감에 밤새 뒤척였다. 출근까지 시간은 많이 남아있었다. 문득 아버지 말씀이 떠올랐다. 성경 전체를 읽기 힘들면 잠언만은 꼭 읽으라고 하셨다. ‘내 아들아’로 이어지는 잠언은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를 통해 말씀하시는 듯 했다. MC사업본부 초기 나는 잠언을 읽고 출근했다.
출근하며 머리에 떠오른 건 응급실이었다. 사업이 적자를 낸다는 건 피를 흘린다는 뜻이다. MC사업본부는 피를 흘리며 응급실에 왔다. 경영자는 응급실 의사였다. 출혈을 막고 잘못된 부분은 치료하며 괴사된 곳은 도려내야 게 내 역할이었다.
일에 있어 냉철한 성격이었던 나는 MC사업본부에선 더 냉철해져야 했다.
응급실에 투입되자마자 업의 본질부터 고민했다. 직전에 있던 PDP 사업부는 장치산업이었다. 장치란 투자를 언제,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성패를 갈랐다. 반대로 MC사업본부엔 장치는 없고 사람만 있었다. 업의 본질은 인적자원이었다. 사람의 지혜를 꺼내는 데 집중해야 했다.
LG전자에서 PDP와 MC는 업의 본질만큼 다른 게 또 있었다. PDP 사업부에서 내 역할은 출혈을 최소화하며 연착륙시키는 것이었다. PDP는 이미 시장에서 LCD에 밀리던 때였다.
MC사업은 달랐다. 미래가 밝았고 회사 내 다른 부문과 연관 관계도 커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반드시 MC사업본부는 스마트폰을 하늘로 비상시켜야 했다.
업의 본질은 달라도 사업의 방향과 흐름은 동일했다. 제품력은 개선하고 비용은 절감하는 것이다. 당장 불요불급한 비용을 줄이면서 제품력 강화에 전사 역량을 총동원했다.
우선 소프트웨어를 보강했다. 당시엔 안드로이드 소프트웨어 전문가가 드물었고 외부에서 가르쳐 주는 곳도 없었다.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그룹 내 소프트웨어 전문가들이 나서서 도와줬다.
하드웨어도 강화했다. LG디스플레이와 협업해 HD, 풀HD, 쿼드HD 등 고화질 디스플레이를 선도했다. 다음은 카메라였다. LG이노텍과 함께 손떨림방지(OIS) 기능을 업계 최초로 도입하는 등 해상도와 화질을 개선했다.
디자인도 신경 썼다. 모든 하드웨어는 디자인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LG는 이미 초콜릿폰, 샤인폰 등으로 디자인을 선도하는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좋은 디자인을 구현하는 게 말처럼 쉽진 않았다. 디자이너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면 종종 기구팀은 힘들다고 했다. 연구소에서 실무자들이 웬만한 조정을 했지만 중요하고 어려운 결정은 내 몫이었다. 수시로 열리는 회의는 항상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고 각자 일리 있는 주장을 펼쳤다.
어느 길을 선택하건 리스크가 있었다.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기대를 극대화하기 위해 본부장을 포함한 참석자 전원이 생각의 맷집을 동원해 좋은 대안을 내야 했다.
사무실 곳곳에 그림 하나를 걸었다. 황새에게 잡아먹히는 중에도 황새의 목을 조르는 개구리 그림이다. 그 옆에 쓰인 문구 ‘Never Ever Give Up(절대 포기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