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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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이장식 (27) 교회사 강의로 본격 사역… 후원자들에 선교 서신 보내

입력 2021-07-14 03:05:04
이장식 교수 부부가 케냐 도고토 동아프리카장로교회 교단 신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머물렀던 집. 이 교수 부부 뒤로 이들의 발이 돼준 자동차가 보인다.


케냐 입국 후 나와 아내는 당분간 나이로비에 있는 성공회교회에 속한 여인숙에 머물게 됐다. 도착 이튿날 유부웅 목사가 케냐인 구미 목사를 대동하고 찾아왔다. 구미 목사는 수년 전 내가 장신대에 출강했을 때 내 강의를 들었던 사람이었다.

우린 유 목사를 따라 리무루에 있는 그의 사택에 가서 유 목사가 가르치고 있다는 성바울 신학대학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교수 몇 분과 인사를 나눴다. 기억나는 건 이 신학교에 네덜란드에서 온 한 교수가 있었는데, 머리에 큰 부상을 입어 붕대를 감고 있었다. 밤에 도둑이 들어 판가(큰 칼 모양의 농기구)로 머릴 쳐서 생긴 상처라고 했다. 집집마다 창문에 철창이 붙어 있어서 쉽게 도둑이 들어오진 못하게 돼 있지만 떼를 지어 오면 막을 수가 없다고 했다.

얼마 후 구미 목사가 우릴 나이로비 인근 도고토에 있는 동아프리카장로교회(PCEA) 교단 신학교 졸업식장에 데려다 줬다. 이곳이 우리가 섬길 곳이었다. 낡고 허름한 2층 건물에서 300여명이 졸업식을 진행 중이었다. 인상적이었던 건 졸업식이 엄숙하기보다 웃음과 유머, 노래와 춤으로 엮어진 화기애애하고 부드러운 분위기였다.

나와 아내는 이 졸업식에서 학교 관계자 및 학생들에게 첫 인사를 했다. 그간 이곳에서 교회사를 가르치던 스코틀랜드 선교사 두골 박사가 은퇴하면서 생긴 빈자리를 내가 채우게 됐다. 집도 두골 박사 집을 사용하게 됐다.

1991년부터 본격적인 케냐에서의 선교 사역이 시작됐다. PCEA는 케냐 200여 개신교 교파들 가운데에서 세 번째로 큰 교단이었다. 1891년 스코틀랜드 장로교 선교로 시작됐고, 도고토에 선교 본부가 있었다. 여기가 교단 본산지다 보니 여러 기관이 들어서 있었는데, 케냐와 인근 나라에서 최초로 설립된 초등학교가 있었다. 교단 최초 현지인 목사 이름을 따서 무사 기타우 초등학교라고 불리고 있었다. 또한 1907년 동아프리카에서 최초로 세워진 자그마한 목조 교회당이 아직도 서 있어서 주일학교 교실로 사용되고 있었다.

난 본국에서 우릴 후원하는 후원자들에게 우리가 하는 일과 함께 케냐의 자연, 문화 그리고 케냐의 교회에 대한 되도록 자세한 내용을 알리고 싶었다. 이런 이유로 선교 서신을 쓰기 시작했다. 7년 정도 지난 후에 케냐에서 쓴 선교서신을 세어 보니 모두 42통 정도 됐다. 이 편지를 모아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1998)라는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책을 쓴 뒤에도 가끔 선교서신을 썼다.

나는 91년 5월 8일 교단 신학교에서 처음으로 교회사 강의를 시작했다. 아내는 그 이듬해 5월 학기부터 기독교교육을 강의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간혹 이웃마을 교회 요청을 받아 200~300㎞ 떨어진 거리를 운전해 다녀오곤 했는데 이때마다 아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12년 된 일본 헌 차를 사서 타고 다녔는데 수차례 사고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핸들이 흔들리거나 차 뒷바퀴가 빠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정리=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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