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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두상달 (1) 어머니께 받은 사랑이 ‘복음의 멀티플레이어’ 원동력

입력 2021-08-10 03:05:03
두상달 서울 반포교회 원로장로가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 가정문화원에서 자신의 삶과 신앙의 여정을 설명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1939년 전북 김제 광활면에서 태어났다. 고향 마을은 벽촌 중에서도 벽촌으로 바다를 막아 만든 거친 땅이었다. 지금도 서쪽으로 18㎞쯤 가면 새만금방조제가 나온다. 광활면 일대가 원래 모두 바다였던 셈이다.

일제강점기, 변두리 어촌 마을 사람들의 일상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이미 다섯 남매를 둔 어머니 문주복 여사는 무려 44세에 날 가지셨다.

지금도 40대 중반이면 노산이라 하는데 그때는 말해 뭣하랴. 평균 수명이 40대 후반에 머물러 있던 시절이었다. 어머니는 늦은 임신이 부끄러우셨다고 했다. 나를 지우려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기도 하셨고 불러오는 배를 묶기도 하셨다. 태아를 지울 수 있다고 알려진 독초를 드시고 몇 시간 동안 혼절하신 일도 있으셨다고 들었다.

생명은 질겼다. 여러 사선을 넘고 넘어 빛을 본 게 바로 나다. 지금처럼 동네마다 산부인과가 있었다면 절대 태어나지 못했을 거다. 병원이 없던 시절 어머니가 날 가지신 게 감사할 뿐이다. 1970년대 정부가 주도했던 산아 제한 캠페인의 ‘산’자만 들어도 나의 과거가 떠올라 경기가 날 정도였다.

부모님은 신앙이 없으셨다. 형제들의 돌림자는 ‘균’이었는데 아버지는 내 이름만 예외로 상달(上達)이라 지으셨다. 돌연변이 같은 이름이라 생각했는데 예수를 믿고 보니 그렇게 좋은 이름일 수 없다. 기도가 하늘에 닿는다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게다가 나의 성이 ‘두’ 아닌가. 기도가 두 번이나 하나님께 상달되니 얼마나 좋은가. 두고두고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대학에 진학한 뒤에야 예수를 알았다. 복음을 접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며 기도하면 할수록 내 삶 전체가 덤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나를 지우기 위해 그토록 애쓰셨던 어머니는 막상 내가 태어나자 한없는 사랑을 부어주셨다. 가난하던 시절이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간척지의 끝자락에 살던 우리 가족에게 지독한 가난은 일상과도 같았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나에게 하나라도 더 먹이셨고 따뜻하게 안아 주셨다. 날 품으셨던 어머니의 큰마음이 지금도 날 감싸고 있는 듯하다. 어머니가 떠오를 때면 눈물이 나고 목이 멘다. 딱히 줄 게 없으셨던 어머니는 벅찬 사랑을 통해 나를 성장시키셨다.

모질게 지우려던 것에 대한 미안함이었을까. 예수를 만난 뒤 느꼈다. 어머니의 사랑이 마치 예수님의 품과 같다고 말이다. 신앙이 없으셨던 어머니였지만 척박한 땅을 뚫고 피어나는 꽃과 같은 아름다움을 내게 보여주셨다. 80년이 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일을 했다. 사업도, 복음 전파도, 방송과 사회봉사도 모두 받았던 사랑을 나누기 위한 노력 때문은 아니었을까. ‘복음의 멀티플레이어’라고 불린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약력=1939년 전북 김제 출생. 고려대 경제학 학사·석사, 미국 센티너리대 인문학 명예박사. 나사렛형제들 중앙회장, 십대선교회(YFC)·기아대책 이사장, 한국기독실업인회(CBMC)·국가조찬기도회 회장 역임. 현 반포교회 원로장로, 칠성산업 대표이사, 가정문화원·인간개발연구원 이사장, 중동선교회 명예이사장. 보건복지부 가정의 날 대통령 표창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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