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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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두상달 (2) “잘 썼다” 선생님 칭찬에 멀리하던 공부 재미 붙여

입력 2021-08-11 03:05:04
학업 성취도와 태도 모두 ‘불양(불량)’하다고 적혀 있는 두상달 장로의 초등학교 성적표. 오른쪽은 공부에 취미를 붙였던 중학교 때 성적표로 전 과목이 ‘수’다.


사랑만 받으며 살던 막내였다. 하지만 공부에는 영 취미가 없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두 달 동안 학교에 가지 않은 적도 있었다. 여기저기 다니며 놀다 이웃 아주머니에게 들켜 사달이 났다.

형들이 학교에 가지 않았다고 나를 혼냈다. 그때 어머니가 “한 놈은 공부 안 해도 괜찮다. 상달이 괴롭히지 말고 내버려 두어라”고 하시며 내 편을 들어 주셨다. 천군만마까지 얻었으니 더욱 공부와는 멀어졌다.

그러다 죽산중학교에 진학했다. 공부할 생각은 물론 없었다. 첫 수업이 마침 영어였다. 다행히 형들에게 미리 로마자 알파벳을 배웠다. “알파벳 쓸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신 선생님의 말씀에 손을 들었다. 배운 대로 칠판에 썼더니 선생님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잘 썼다”라고 칭찬해 주셨다.

선생님에게는 늘 혼만 났지 칭찬을 받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그 칭찬이 나를 변화시켰다.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고 성적은 꾸준히 올랐다. 1학년 2학기 첫 시험에서 전교 3등을 했다. 2학년부터는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우등상을 독차지하며 학비까지 면제받았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10㎞ 거리였다. 먼 거리를 걸어서 등하교하며 공부했다. 공부의 기쁨이 무엇보다 커 멀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첫 수업에서 선생님의 칭찬이 없었다면 나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았을까. 훗날 유명 강사로 무대에 오를 때마다 칭찬과 격려가 지닌 힘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 청소년들을 만날 때마다 격려의 말을 많이 한다. 자녀의 미래를 보고 칭찬하고 기도해줘야 한다. 지금 부모들도 공부하라고만 하지 말고 칭찬의 씨앗을 자녀들에게 심어줘야 한다. 부모의 입술이 자녀를 축복하는 샘물이 돼야 한다.

가난을 벗어나고 싶어 경제학과에 진학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업을 하려면 경영학과가 좋다는 걸 모른 채 택한 길이였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돈을 벌어야 했다.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종로5가에서 좌판을 벌이고 껌과 담배 등을 팔았다. 한겨울에 장사하며 동상에 걸린 일도 있었다. 인생에 첫 사업이었던 셈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1960년 고려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모든 걸 다 가진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되지 않던 때였다. 대학에 갔다고 형편이 달라지지도 않았다. 낯선 서울에는 더욱 비참한 가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촌놈이 의지할 곳은 많지 않았다. 스스로 작아지는 날이 늘었다.

다행히 과외교사 자리가 생겼다. 그때는 종로에 부자들이 많이 살았다. 내가 가르친 아이들은 그중에서도 가회동과 계동 등에 사는 정말 부잣집 자제들이었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부자들이 모여 살던 동네였다.

‘고대 경제학과 학생이 잘 가르친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학생들이 날로 늘었다. 수입도 늘면서 생활도 안정을 찾았다. 낮에는 대학 강의를 듣고 저녁에는 아이들을 만나는 일상이 반복됐다.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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