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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두상달 (3) 뜨거운 복음 메시지에 매료 “주를 위해 살겠습니다”

입력 2021-08-12 03:05:03
CCC를 설립한 김준곤 목사가 1960년대 대학생 회원들 앞에서 민족복음화의 비전을 선포하고 있다.


대학 2학년 때로 기억한다. 한 친구가 강의실에 들어가던 날 붙잡았다.

“상달아. CCC라는 데가 있거든.” “뭐 하는 데야?” “무슨 선교회인데.” “나 교회 안 다닌다.” “거기에 여학생들이 많단다. 가보자.” 청춘에게 무슨 설명이 더 필요했겠는가. 여학생들이 많다는 친구의 말 한마디로 모든 경계가 무너졌다. 그날부터 여자친구를 사귀겠다는 일념만으로 명동 거리 한구석에 있던 CCC, 한국대학생선교회 사무실을 드나들었다.

사랑만 받고 자란 나였다. 가난했지만 가족의 모든 사랑을 독차지하다 보니 이기적인 성격도 생겼다. 날카롭고 비판적인 면도 있었다. 무엇보다 다혈질이었다. CCC를 알게 된 뒤부터 나는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예수님의 탄생을 기점으로 기원전(BC)과 기원후(AD)로 나뉘듯 CCC가 내 인생의 변곡점이었다.

1960년대에는 히피 문화를 위시한 허무주의가 전 세계를 휩쓸었다. 나도 늘 무거운 삶의 짐을 지고 살며 수시로 좌절했다. 주변에 상의할 사람도 없었다. 20대 초반, 수많은 유혹 속에 살던 시절 나는 극적으로 예수를 만난 뒤 성숙할 수 있었다.

1958년 한국 CCC를 설립한 김준곤(1925~2009) 목사님의 입에서는 늘 뜨거운 복음의 메시지가 터져 나왔다. 그 말씀이 벅차게 다가왔다. 땅으로 떨어지는 게 하나도 없이 가슴판에 박혔다. 평소 같았으면 분명 비웃었을 나였지만 김 목사님을 만난 뒤부터 영의 귀가 열렸다. 완전히 매료됐다.

마포구 염리동 산꼭대기 자취방에서 새벽 미명에 눈을 떠 무릎을 꿇고 기도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베개를 붙들고 서툰 언어로 나의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기도를 드리던 나날이 다혈질이던 나를 변화시켰다. 첫사랑의 감격으로 일생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이런 고백을 한다. “걸레 같고 질그릇 같던 나, 다혈질이던 나를 변화시키고 위로와 소망이 되며 삶의 의미를 새롭게 알게 하셨던 주님. 내가 만약 주님을 몰랐다면 탕자같이 살았을 겁니다. 나를 변화시켜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주를 위해 살겠습니다”.

하루 일을 알 수 없던 복잡하고 요란한 노도광풍의 시대를 살았다. 그 순간 찾아온 복음은 나를 칠흑 같은 어두움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있더라도 내게 부족함이 없다는 고백을 하게 했다.

모든 게 CCC와의 뜻밖의 만남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때때로 신앙이 무뎌지기도 한다. 신앙이 휘청거릴 때마다 CCC에서 복음의 열정을 불태우던 추억을 되새긴다. 복음을 되새김질할 때마다 뭔가 울컥하는 것이 가슴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며 나를 다시 세운다.

내 안에 깃든 주님이 무뎌진 나의 신앙을 회복시켜주시는 느낌을 받는 순간이다. 지금 생각하면 ‘전설의 고향’ 같은 옛 추억이다. 하지만 그때 심어진 신앙만큼은 지금도 살아 내 안에서 불타고 있다.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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