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체육관 옆을 지나던 때 이야기다. 수많은 10대가 모여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체육관에 들어가지 못한 아이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한 여학생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들어갈 수 없게 됐으니 집에 가서 공부나 하지”라고 권했더니 “지금 우리가 공부할 형편이에요”라며 정색을 했다. 한 아이돌 그룹 멤버의 생일잔치가 열리느라 벌어진 일이었다.
사춘기는 예민한 시기이자 위기의 때이기도 하다. 이때 방황하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놓치고 만다. 회복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청소년 사역은 예방이 중요하다. 절벽 밑에 구급차를 대기 시킬 게 아니라 낭떠러지 위에 방어벽을 치는 게 더 중요한 것과 같은 이치다.
나도 청소년기에 방황할 뻔했다. 그러나 선생님의 격려 한마디가 나를 깨웠고 공부를 시작하는 전환점이 됐다. 또 약관 20대에 만난 예수 그리스도가 인생의 향방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곡점이 됐다.
청년 시절에 예수를 만나 학생 선교단체에 참가하다 보니 직장 생활이나 사업을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청년 사역에 관심 갖게 됐고 많은 시간을 바쳤다. 1980년 초 극동방송·아시아방송 이사로 취임한 걸 계기로 김장환 목사님의 권유로 한국십대선교회(YFC) 이사로 참여하게 됐다.
YFC는 ‘유스 포 크라이스트’(Youth for Christ)의 약자로 1945년 미국에서 시작된 국제 청소년 선교단체이며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전임 순회 전도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해방 후 시작됐지만 오랫동안 제대로 된 활동을 못하다 1960년대 초 김 목사님이 정식 창립하면서 활성화됐다. 나는 오랫동안 이사로 활동했고 그중 12년 동안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단체를 법인으로 전환했고 본부 사무실을 마련했다. 대형집회도 여는 등 온 힘을 다해 봉사했다. 또한 최낙중 목사님의 권유로 ‘청소년 지도자 대학’ 이사장으로도 활동했다.
지금 교회학교에 출석하는 학생은 반 토막 정도가 아니라 80~90%가 감소한 교회도 있을 정도다. 성인과 달리 청소년 복음화 비율은 5% 미만이다. 국가의 20~30년 후 변화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이 공부하는 교실을 보라는 말이 있다. 청소년 사역은 그만큼 한 국가의 미래이자 희망이며 자원이기 때문이다.
50여년 전만 해도 교회 교육이 사회 교육보다 앞서 있었고 매력적이었다. 프로그램도 좋았고 배울 게 넘쳐났으며 먹을 것도 줬다. 지금은 역전됐다. 사회의 다양한 프로그램이나 놀거리가 훨씬 매력적이다. 과거 어린이들이 모이는 집회는 폐회 예배가 끝난 뒤에도 집에 가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집에 가자’는 노래까지 만들어 함께 부르며 귀가를 권했다.
지금 교회학교 예배와 반별 성경공부는 지루하고 재미없어져 버렸다. 복음은 바뀌지 않아도 복음을 전하는 방법과 도구는 변화돼야 한다. 인생의 젊은 시절 나를 변화시켰던 예수님께 늘 기도한다. “주님. 이 나라의 청소년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건강하게 자라가고 세워지게 해 주옵소서”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