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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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두상달 (21) 아내는 36년간 재소자들에게 성경 가르친 ‘최장기수’

입력 2021-09-07 03:05:04
김영숙 권사가 2019년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제8기 국민추천포상 수여식에서 재소자들에게 한글과 영어를 교육한 공로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국민포장을 받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970년대 들어 성경공부와 신앙 양육을 위한 소그룹인 ‘순모임’이 점차 확대됐다. 나사렛 형제들은 가정과 직장, 교회에서도 순모임을 가졌다. 1980년 정·재계 인사를 비롯해 군인과 언론인을 망라한 12명의 동료가 의기투합해 새로운 순모임을 만들었다.

마침 고려합섬 장치혁 회장이 여의도의 한 아파트를 모임 공간으로 제공했다. 이곳에서 매주 토요일 오전 6시에 모여 2시간 동안 성경공부와 기도회를 한 뒤 출근했다. 몇 명이 더 참여해 20명을 넘었고 ‘한국성서연구회’라는 이름을 붙였다.

다들 열심히 참여했다. 몇년이 지나자 회원 중 장·차관과 군 장성이 나왔다. 이뿐 아니라 국회의원과 대사 교수 대통령비서실장과 주치의 등 각계 요직에서 큰 역할을 하는 이들이 배출됐다.

비슷한 시기, 아내가 집에서 동네 주민과 함께하던 ‘어머니 순모임’도 있었다. 이게 소문이 났는지 어느 날 안양교도소에서 연락이 왔다. 재소자들에게 성경을 가르쳐 달라는 부탁이었다. 아내는 이를 계기로 2019년까지 주말마다 재소자들을 만났다. 나도 수시로 따라가 메시지도 전하고 여러 일을 도왔다.

아내는 36년 동안이나 봉사를 하며 교도소를 드나들었던 ‘최장기수’다. 교도소에 갈 때마다 간식거리도 풍족하게 사 갔다. 한 교도관이 “그 돈이 어디서 나와요”라고 물었다고 했다. 아내가 “남편 것 훔쳐와요”라고 해 다 같이 웃었던 일화도 있다. 여러 교회 여전도회도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줬다.

아내에게 한글을 배운 한 재소자가 “선생님 눈앞이 환해졌어요. 딴 세상 같아요”라고 인사할 때는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영어 시간에는 주기도문과 시편 23편,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 ‘무지개’를 암송하게 했다. 이런 일이 있었다. A라는 재소자의 어린 자녀가 늘 “아빠 어디 갔냐”고 묻자 아내가 “미국에 공부하러 갔다”고 둘러댄 것이었다. A씨가 출소 후 집에 가자 반갑게 안긴 자녀가 “아빠 영어 좀 해보라”고 보채자 잠시 당황하다 문득 교도소에서 외운 게 생각나 시편 23편과 무지개를 영어로 암송해 위기를 모면했다. 자녀는 “아빠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들었다고 했다.

12년 전쯤 일이다. 반포교회 한 교인에게 연락이 왔다. 귀금속 관련 사업을 하는 교인인데 지난 밤 집에 강도가 들었다는 것이었다. 무서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데 갑자기 강도가 교회 달력을 보고 “반포교회 교인이냐”고 묻더란 것이었다. 그렇다고 하니 “김영숙 전도사 아느냐”고 재차 물어 그렇다고 하니 “당신 김 전도사 덕 본 줄 알라”며 조용히 나갔다는 이야기였다. 아내는 재소자를 만날 때마다 “예수 믿고 다시는 ‘별 달 일’ 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날 밤 그 강도가 아내의 말을 회상하며 뉘우친 셈이었다.

우리는 모두 담벼락 위를 걷는 사람들이다. 어쩌다 잘못해서 담 안으로 떨어지면 재소자, ‘담 안의 사람’ 되는 것이고 밖으로 떨어지면 일반인으로 사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죄인이나 마찬가지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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