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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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라! 청년이여 그대 심장소리가 이 땅 구석구석 넘치게하라

입력 2021-10-12 21:25:01
캄스쿨 18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훈련중인데이비드 차 목사.




2021년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MZ(2030)세대의 가장 큰 고민은 소망과 희망, 꿈이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힘들어도 소망이 있으면 버틸 수 있다. 군 생활이 아무리 힘들어도 제대할 날짜가 있다는 희망이 있다. 오늘 아무리 힘들어도 내일 소망이 있다면 버틸 수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청년들에게 3포(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세대란 말을 듣게 되었다. 청년에게 가장 심장 뛰는 단어가 연애이고 결혼일텐데 무엇이 청년들에게 연애와 결혼마저 포기하게 한것일까?

실제로 서울에서 20,30평대 신혼집을 얻으려면 강남권의 아파트 시세는 20억 그 외 지역도 10억 원을 형성하고 있다. 청년들이 어렵게 대학을 졸업하고 힘들게 취직을 해서 받은 급여로 어떻게 집을 구할 수 있을까? 그러니 당연히 연예하고 싶고 결혼하고 싶고 출산도 하고 싶지만 현실의 문제앞에서 다 포기한 세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더욱이 코로나로 사적 만남의 기회마저 급격하게 줄어들어 더욱 만남의 기회가 없어지게 되었다.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핸드폰을 열면 여야의 끝없는 대립과 갈등, 사회면을 장식하는 끔찍한 사건소식, 여야를 막론하고 힘있는 자녀들의 소설같은 이야기 앞에 분노조절장애 증상까지 보이는 시대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덮어두고 게임으로 유튜브로 넷플릭스로 들어가 오늘 하루 시간을 확실하게 즐길 컨텐츠를 찾기에 급급한 시대를 살아간다. 죽도록 즐길게 많은 시대이지만 정말 심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몇 일전 우연히 책장에서 책 한권을 꺼내 보았다. 1902년을 살아간 20대 청년의 이야기였다. 잠시 상상해 보았다. 내가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1902년으로 돌아갔다면 행복했을까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 시대를 살아가야했던 한 청년은 1902년 과거시험을 보기위해 한양으로 간다. 시대는 조선 말기 과거시험에 붙어봐야 망해가는 조선의 공무원이 되는 것인데 무슨 소망이 있었을까? 시험을 보러가는 길에 밤이 되어 한 가정집에 잠시 머물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밤 그 집 주인으로부터 기독교 복음을 듣게 된다. 소망이 없던 그 청년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청년은 상투를 자르고 고향으로 돌아가 유교 집안에서 대대로 모셔온 조상의 신주를 매장하고 사당을 부숴 버렸다. 사당을 철거한 이 일로 인해 가족과 친족들에게 패륜으로 낙인찍혀 신변의 위협을 느낀 청년은 고향을 떠나 평양의 한 선교사 가정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숭실중학교에 입학하여 공부를 하게 된다. 졸업반이던 1907년 1월 평양대부흥운동이 일어났을 때 그의 학교 안에서도 부흥의 여파로 회개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그 이후 감리교의 목회자가 되어 1910년 정동교회에서 개최된 연회에 참석하여 청나라에 파견될 감리교 선교사로 임명되어 베이징으로 건너가게 된다. 그곳에서 안창호, 김구, 이승만 등이 조직한 신민회의 핵심인물이 된다. 그 사이 조선은 멸망한다. 그리고 그 청년은 목사가 된다. 서울 정동교회 목사가 되어 당시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의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그 설교를 유관순은 학생신분으로 듣고 있었다. 1919년 독립운동에 전념하고자 출국하여 임시정부 활동을 활발하게 하며 1931년 6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바로 임시정부 의장 손정도 목사(1882.7.26~1921.2.19)의 일대기이다.

손정도 목사가 생을 마감할 때 그의 아들 손원일은 20대였다. 나라는 일제 치하였고, 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하다 생을 마감하셨다. 그러한 1930년대를 살아가야하는 이 20대 청년은 어떠했을까?

손원일은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던 시절, 청소년기를 보내며 앞으로 탄생할 해방된 대한민국에 해군을 건설하고자 하는 꿈을 꾸게 된다. 아직 탄생하지 않은 나라를 꿈꾸며 구체적으로 해군을 준비한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꿈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손원일은 차근차근 그 꿈을 위해 준비해 나간다. 상해 국립중앙대학 항해과를 1930년 6월 우등으로 졸업하고 중국 해군부에서 항해지식을 배우며 1930년 7월 21일 상해를 출발해 세계 일주를 하며 미래를 준비한다. 이후 실제 해방이 되자 그는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에 있는 안동교회에서 청년부들과 함께 해방병단(海防兵團)을 만들고 이후 해방병단은 미군정에 의해 해안경비대로 공식적인 정부조직이 되었으며, 미군에 편지를 쓰고 교회를 다니며 모금을 하여 백두산 함을 미국 해군사관학교에서 구입하여 대한민국 최초의 군함을 준비하게 된다. 손원일은 1948년9월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초대 해군 참모총장으로 임명된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손원일 제독이 이끄는 백두산함은 부산 앞바다를 지키며 북한 특수부대 600명을 실은 북한 함을 격침시키고 부산이 북한군에 점령되지 않도록 유엔군과 미군이 부산항에 들어올 수 있게 부산항을 지키는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된다. 이후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어 서울 수복 후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한 부대가 바로 손원일 제독의 부대였다. 만약 6.25전쟁 때 우리나라 해군에 백두산 함이 없었다면 전쟁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데 역사를 돌이켜 올라가 보면 의문점이 하나 남는다. 1902년 손원일 제독의 아버지 손정도 청년에게 누가 복음을 전한 것일까? 1885년 4월 5일 인천 제물포항에 청년 아펜젤러 선교사가 복음을 들고 조선 땅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 땅에 소망의 기도를 심는다

“우리는 부활절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죽음의 철장을 산산이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주께서 이 나라 백성들을 얽어맨 결박을 끊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빛과 자유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언더우드 선교사도 청년의 때에 조선 땅에 들어와 믿음의 기도를 심는다. 만약 1880년대 이러한 하나님의 꿈을 가진 청년들이 순종의 삶을 살지 않았다면 1902년 과거시험을 보러가던 20대 손정도는 복음의 감격을 경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손정도가 목사와 독립운동가가 되지 않았다면 유관순도 6.25전쟁의 영웅 손원일 제독도 우리의 역사 속에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대한민국이 없었을 수도 있다.

역사를 살펴보면 엄청난 위기와 험난한 파도는 항상 청년들에게 있었고, 청년들에게 도전한다. 그 도전 앞에 낙심하고 포기하고 시간을 죽이며 살아간 자들도 있었을 것이고 꿈을 갖고 기도하며 믿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간 순종의 삶을 살아낸 자들도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유래 없는 코로나 상황에 내가 섬기고 있는 KAM선교회도 과연 비대면으로 청년들을 제자훈련 할 수 있을까 과연 얼마나 신청을 할까하는 의문이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2021년 4월 캄스쿨 청년 제자훈련을 시작하였다. 놀랍게도 200여명의 전 세계의 청년들이 신청을 하여 24주간 매주 토요일 8시간씩 줌과 슬랙 등 다양한 프로그램 등을 통해 제자훈련을 마치고, 180여명의 청년들이 졸업과 수료를 하게 되었다. 생존하기도 버거운 이 시대에 생존이 아니라 부르심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전 세계에서 모인 청년들을 졸업시키며, 마지막으로 이들에게 어떤 소망 꿈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지 않을수 없었다. 여전히 코로나로 대면훈련은 어려운 상황이었다. 대한민국을 향한 하나님의 꿈은 무엇일까 바로 황무지와 같은 이 나라에 하나님의 마음으로 밀알같이 살아간 위대한 믿음의 선조들이 있었다는 것을 청년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사진전을 준비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없던 대한민국의 암흑기에 믿음의 선조들이 심었던 희망의 메시지 보며, 오늘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내는 청년들이 일어나길 꿈꾸며 그렇게 사진전을 준비했다. 낙망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받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 안창호(1878.11.9~1938.3.10)

“이루고 못 이루고는 하늘에 맡기고 사명과 의무를 다하려다가 죽는 것이 얼마나 떳떳하고 가치 있는가”- 이회영(1867.3.17~1932.11.17)

오늘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꿈이 없는 시대를 살아간다. 그러나 누군가 기도하며 하나님의 꿈을 다시 꾼다면, 그리고 믿음의 선배들과 같이 믿음으로 그 기도를 심는다면, 세월이 지나 복음 통일된 대한민국에서 열방을 복음으로 섬길 선교한국의 꿈을 꾸며 그러한 일에 다시 심장이 뛰는 청년들로 일어나 대한민국 곳곳에 생기가 넘치기를 소망해 본다. 현재 대한민국은 분열되어 있다. 그리고 미래를 향해 한 발자국 나아가기 힘든 상황이다 이러한 때에 다시 청년들이 꿈을 꿔야한다. 믿음의 기도를 통해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하며 미래를 위해 과거의 상처와 아픔을 매듭지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누군가는 기도의 용광로를 만들어 민족의 부르심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시대의 아픔과 상처를 어루만지고 다시 함께 꿈을 꾸며 나아가는 일을 해야 한다.

이 가을에 나는 다시 한번 이땅에 기도의 용광로가 세워져 다시 기도로 꿈꾸는 대한민국이 되길 소망해 본다. 그리고 청년들이 저 북녘 땅과 만주를 지나, 몽골을 지나서 복음을 들고 땅끝까지 선교하는 선교한국이 되길 소망해 본다.

데이비드 차 목사(KAM선교회 대표·물맷돌수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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