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이 목사? 부담스러운 별명이다. 하지만 유달리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태어나 고생 끝에 어려운 이웃을 돕고, 전도 열심히 하는 목회자로 거듭났는데…. 그리 나쁜 별명은 아닌 것 같다.”(웃음)
박용배 청라사랑의교회 목사는 어려운 성장기를 보냈다. 알코올 중독자로 가정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 병으로 돌아가신 어머니, 그리고 방황하는 삶을 살다 객사한 형제들….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겨우 마친 뒤 도시로 나와 중국집과 레스토랑 등을 전전하며 일했다. 16세 때 종일 식당에서 일하면서 교회 새벽기도에 나가 하나님께 뜻을 구하기 시작했다.
인천 서구 담지로 청라사랑의교회 세미나실에서 29일 만난 박 목사는 그 간절함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뒤늦게 중·고교 검정고시, 대학원까지 마친 뒤 빈민 운동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만이 가난한 자의 심정을 알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믿음을 바탕으로 인천 부평구 부개동 산동네에서 빈민 선교를 했다.
그러다가 “은과 금을 주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전도자로 거듭났다. 복음 전도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정부종합청사 직원, 신문사와 방송국 직원들에게 신앙상담과 설교 말씀을 전했다. 청와대 및 TV 연기자 신우회에서는 예배와 성경공부를 인도했다. 전 세계 50여개국, 70여개 도시에서도 부흥회를 인도했다.
그는 탈북자 구호와 선교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탈북자에 관한 관심은 2007년 탈북자 예배를 인도한 것이 계기다. 이후 북한 복음화에 사명을 품은 탈북자 20여명을 신학교에 보내 목회자로 만들었다. 북·중 국경지대, 제3국 등에서 탈북자들과 성경공부를 진행했다. 이 중엔 인신매매로 팔렸다가 박 목사를 통해 구출된 탈북자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신학을 공부해 목사안수를 받고 다른 탈북자를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는 사역을 담당하고 있다.
그의 목표는 이런 탈북 목회자 100명을 세우는 것이다. 또 북한 땅에 문이 열렸을 때 100곳 이상 교회를 세우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송구영신예배 때 교인들은 북한 각 시·군에 교회를 설립하겠다고 작정하고 헌금한다. 지난 6월 인천 남동구 논현동에 탈북자를 위한 논현사랑의교회를 설립했다. 탈북 여성과 중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위한 방과후 공부방을 운영한다.
그는 최근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못난이 목사의 전도행전 119-전도는 쉽고 되어지는 것이다(성경적 전도방법과 적용과 사례)’(CLC)라는 책을 펴냈다. 30년 현장 전도의 사례를 정리한 것이다. 게임중독 학생과 대기업 회장, 시한부 인생, 언론사 기자, 스님, 무당, 탈북자 체포하고 수사하는 중국 공안에 이르기까지 그 대상은 다양하다.
“전도가 어렵다고 말하는 크리스천이 의외로 많습니다. 전도가 중요한 것은 알겠는데, 잘 안 되니까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겠죠. 정말 전도는 어렵고 힘든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불가능하고 어렵고 힘든 일을 이를 갈면서 억지로 하라고 우리에게 복음 전파와 전도를 명령하신 것이 아닙니다(신 30:11~14).”
그는 “이 책이 전도는 어렵고 힘든 것으로 오해하는 많은 이에게 마중물이 되고 전도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키며 도전받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출간 소감을 밝혔다. 그는 유튜브 방송 ‘박용배TV’를 운영하며 전도와 북한선교 노하우를 전하고 있다. 저서로 ‘못난이 목사 벼랑 끝에서 날다’ ‘생각의 설계’ ‘운명과 맞짱 뜨기’ 등이 있다. 또 희망을 노래하는 음반 ‘두 바퀴의 사랑’을 냈다.
그에겐 기도 제목이 있다. 개척교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어려운 교회 목회자와 사모를 영적 훈련을 통해 미자립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것이다. 그동안 받은 응답과 축복을 나누고 그분들도 전도와 제자의 응답을 누리도록 도울 수 있길 기도드린다.
박 목사는 “빛과 어둠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며 “하나님의 선한 영이 들어오면 어둠의 세력은 물러가게 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영적 싸움의 현장은 치열하다. 때론 두렵고 낙심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전도의 열매는 아름다운 기쁨으로 충만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