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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마다 도움의 손길, 포기하지 않은 기다림에 대한 응답”

입력 2021-11-19 17:45:01
조명환(오른쪽) 월드비전 회장이 지난 4일 서울 영등포구 국민일보에서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과 함께 인생의 고비마다 찾아오신 예수님의 은혜를 나누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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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단체의 후원을 받았던 어린이가 성장해 구호단체의 수장이 됐다. 지난 1월 취임한 조명환(65) 월드비전 회장 이야기다. 미생물공학을 전공한 조 회장은 1990~2020년 건국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2005~2009년, 2015~2020년에는 아시아·태평양에이즈학회 회장으로도 활동했다. 2000년에는 셀트리온의 전신인 넥솔바이오텍을 공동 설립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오직 그가 자랑하는 것은 그를 여기까지 세우신 예수님 한 분이다. 삶 속에서 여러 번 실패했지만,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인내하고 기다렸던 그는 이제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처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 세계 아이들을 돕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국민일보 크리스천리더스포럼 회장인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이 지난 4일 서울 영등포구 국민일보에서 조 회장을 만났다.

김영훈 회장=월드비전 회장으로 취임하신 지 10개월이 지났다. 저에겐 ‘선명회’라는 옛 이름이 더 친숙하다. 아직 짧은 시간이지만 회장으로서 활동한 소회가 어떤지 궁금하다. 계획했던 일들은 잘 진행되고 있나.

조명환 회장=귀한 일을 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하나님이 나에게 큰 축복을 주셨다. 회장에 취임하자마자 한 일이 매일 직원을 3명씩 만나 점심을 먹은 것이다. 월드비전이 어떤 곳인지 이해하고 직원들이 어떤 이들인지 파악하는 시간이었다. 나의 목표는 ‘월드비전 3.0시대’를 여는 것이다. 1950년부터 40년간 한국이 원조를 받았던 때를 ‘1.0시대’라고 한다면, 한국이 다른 나라를 도와주기 시작했을 때가 ‘2.0시대’다. 지금 한국 월드비전은 전 세계에서 미국 캐나다 호주 다음으로 크다. 놀라운 일이다. 이제 3.0시대에는 새로운 모금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 일대일 아동 결연을 통한 후원금 외에도 다른 수입원을 만들려고 한다. 현재 한국 월드비전이 200만명을 돕고 있는데 앞으로 500만명을 돕는 것이 목표다.

김 회장=월드비전에서 후원받은 아이들이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모두 파악을 하고 있나.

조 회장=물론이다. 올림픽 체조 금메달리스트 양학선 선수도 월드비전의 후원을 받았다. 오송삼 건국대 교수도 마찬가지다. 한국 월드비전이 71년 됐으니 이미 은퇴한 사람도 많다. 후원을 받은 이들이 다시 후원자가 되어 어린이들을 돕기도 한다. 얼마 전 한 할머니가 월드비전에 방문하셨더라. 우리 직원이 왜 오셨나 여쭸더니 가방에서 200만원을 꺼내며 기부하셨다 한다. 할머니가 자녀 4명을 키우면서 어려움을 겪었을 때 월드비전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걸 갚고 싶어 오셨다는 거다. 기초생활수급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표가 350만원을 기부하는 것이라면서 곧 150만원을 더 가져오겠다고 하셨다.

김 회장=우리나라가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가 됐듯이 외국의 후원을 받던 어린이가 후원 단체의 수장이 됐다. 회장님의 인생 스토리를 소개해 달라.

조 회장=어렸을 때 집안 환경이 좋지 않아서 미국의 에드나 멜슨이라는 후원자가 45년 동안 저를 도와줬다. 제가 다 자라서 대학교수를 하고 있을 때도 매달 15달러를 보내왔다. 후원자가 105세까지 사셨는데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돈을 보내주신 것이다. 대학교수에게 15달러가 왜 필요하겠나. 당시엔 이해를 못 했다. 그런데 월드비전 회장이 되고 보니 내가 평생 후원 아동이라는 것을 잊지 않게 하려고 후원자가 긴 시간 후원을 해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가 다른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일을 하라는 후원자의 메시지였던 것 같다.

김 회장=자서전 제목이 ‘꼴찌박사’다. 건국대를 거쳐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애리조나대, 스탠퍼드대, 하버드 케네디스쿨까지 거쳤는데 ‘꼴찌박사’라니, 무슨 의미인가.

조 회장=어렸을 때 공부를 못했다. 대학 입시도 실패했는데 아버지의 지인이었던 당시 건국대 교수님이 생명공학부가 미달인데 지원해보라고 했다. 앞으로 생명공학의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생명공학이라는 단어도 난생처음 들었지만 가서 공부했더니 정말 생명공학의 시대가 오더라. 그 후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 들어갔지만 성적이 안 좋아 제적까지 당했다. 창피해서 오하이오 공원 벤치에 1년간 앉아있기만 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에이즈를 전공한 애리조나대 교수님이 나를 받아준다고 해서 에이즈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마치니 에이즈가 세계적으로 창궐하면서 한국에도 전문가가 필요하게 됐고 건국대 교수 자리에 올랐다.

몇 년 후 건국대 개교 50주년 행사에 노벨상 수상자인 블룸버그 교수를 초청했는데 그 교수가 나를 스탠퍼드대로 불렀다. 그 교수가 거기서 기업인 정치인 등 많은 사람을 소개해줬다. 평생 과학만 공부하던 내가 다른 분야 사람들을 만나 과학과 경영이 융합해 인류 복지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케네디스쿨에서 경제 경영 정치 행정을 본격적으로 공부했고 MIT에서 블록체인까지 배웠다.

김 회장=인생의 순간순간마다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사람이 찾아온 것이 인상 깊다. 예수님이 수가성의 여인을 찾아오신 것처럼 인생에 그런 경험이 많은 것 같다.

조 회장=어머니가 개척교회 교회학교 교사를 하셨다. 모태신앙으로 교회에 다녔는데 너무 가난하고 공부를 못했으니까 더 하나님을 붙잡았던 것 같다. 후원자 에드나가 매달 보내준 편지의 맨 마지막 내용은 똑같았다.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신다. 너는 그 사랑을 믿어야 한다. 내가 널 위해 기도한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니까 믿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도와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살았다. 포기하지 않고 믿고 기다린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던 것 같다.

김 회장=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어려울 때 구호단체 수장을 맡았다. 팬데믹으로 어려운 이들도 늘었지만 그만큼 소외 이웃을 돕는 손길이 더 많아졌다고 들었다. 현장에서 볼 때 어떤가.

조 회장=너무 놀랍게도 후원금이 줄지 않았다. 후원자의 면면을 살펴보면 다 평범한 소시민이다. 본인도 어려운데 더 어려운 이들을 돕고 있다. 암 선고를 받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이 대리운전하면서 아동 후원을 하는 경우도 있다. 덕분에 아이들이 깨끗한 물을 마시고 교육을 받고 있으며 병을 고치고 있다.

김 회장=아이들을 도우면서 선교는 어떻게 하고 있나.

조 회장=월드비전의 목적은 조건을 따지지 않고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것이다. 그 행위로 선교를 하고 있다. 먹을 게 없어 죽어가는 아이를 도와주며 성경을 전달하지는 않는다. 아이가 죽지 않는 게 우선이다. 대신 월드비전 직원들의 헌신을 통해 아이들이 복음을 접한다. 직원들은 보통 15년간 한 마을에 거주하는데 직원들에게서 기독교인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나중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목사가 되는 아이들도 많다.

김 회장=이야기를 듣다 보니 마치 요나의 삶처럼 느껴진다. 요나는 3개 지역을 변화시켰는데도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백했다. 하나님께서 회장님의 삶을 통해 선한 일을 하고 계신다는 게 느껴진다. 회장님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조 회장=예수님은 저의 전 재산이다. 예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직원들이 가끔 나에게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냐고 묻는데 저는 스트레스가 없다.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생기지 않는 게 아니다. 안 좋은 일이 생겨도 이것이 나를 연단시키는 하나님의 작업이라고 생각하면 감사하게 된다. 다른 건 모두 잃어버려도 예수님은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정리=박용미 기자 m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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