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한인연합교회 목회 시절 기억에 남는 성도는 김진해 안수집사님과 김계자 집사님(현 권사님) 부부다. 남편 집사님은 내가 처음 부임했을 때부터 교회에 대한 불평과 불만을 터뜨리다가 6개월을 교회에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인 집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유방암이 재발해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남편 집사님이 방황하던 6개월이 뇌리를 스쳤다.
부인 집사님을 위해 매일같이 기도하던 중 고난주일을 맞이했다. 집사님의 병세는 더 심해져 암세포로 인해 목뼈와 골반까지 삭아버렸다. 집사님의 엎드린 모습이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다 쓰러진 모습으로 보였다. 집사님 가정의 십자가가 얼마나 무거웠을까 하는 불쌍한 마음에 금식기도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닷새째 금식하던 날이었다. 나도 모르게 이런 기도가 터져 나왔다. “만약 김 집사님을 불러가실 것 같으면 차라리 저를 대신 불러가 주시고 그렇지 않으신다면 김 집사님을 살려 주시옵소서!”
목숨을 걸고 얼마나 간절히 부르짖었는지 모른다. 한참 울부짖고 있는데 갑자기 성령님의 불이 가슴에 뜨겁게 와닿았다. 하나님께서 살려 주신다는 증표라는 마음에 한없이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응답대로 김 집사님은 유방암에서 치유 받았다. 이 기적은 그동안 교회를 어지럽히고 힘들게 했던 교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하나님의 표적이었다.
시카고한인연합장로교회에 온 지 4년이 되었을 때인 1996년 6월 1일 시카고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PhD)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사표를 냈다. 그런데 교인들은 나와 평생을 함께하길 간절히 바랐기에 처음 당회에 사임서를 냈을 때는 거절을 당했다. 두 번째로 다시 사임서를 냈을 때 장로님들은 더 거절을 못 하고 “목사님이 꼭 가고 싶으시면 제직회 허락을 받고 가세요”라고 말했다. 제직회에서는 사임 반대 의견들이 터져 나왔다.
가까이 지내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의 발언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동안 나를 힘들게 하던 집사님들도 “목사님, 우리가 목사님 처음 오셨을 때 힘들게 해드렸습니다. 이제 은혜받고 열심히 하려는데 양 떼를 버리고 떠나는 목자가 어디 있습니까” 하면서 붙잡는 것이었다. ‘이렇게 붙잡을 것 같으면 진작 잘해 줄 것이지….’ 하는 야속한 마음마저 들었다.
궁리 끝에 1년간 함께 기도하자고 했다. “하나님께서 1년 동안 저의 마음을 바꿔 놓으시면 제가 이곳에서 뼈를 묻겠지만 만약 저를 한국으로 보내길 원하시면 그때는 선교사를 파송하는 심정으로 보내주십시오.” 그런데 1년을 기도해도 나의 마음은 계속 한국으로 달려갔다.
이렇게 나는 시카고를 떠나왔다. 벌써 24년 세월이 지났지만 내 마음속 첫사랑인 그들을 잊을 수가 없다. 평생 잊지 못할 양 떼들이요, 첫 담임 목회에서 만난 너무도 소중한 동역자들이었다. 지금도 시카고 오헤어공항에 나와 마지막 환송 인사를 나누며 눈물 흘리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을 잊을 수가 없다. 아니,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