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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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김의식 (11) “배경 없고 돈 없는 사람은 신학대 교수도 못되나”

입력 2022-01-21 03:05:04
김의식(앞줄 왼쪽 여덟 번째) 목사가 지난해 서울 강서구 치유하는교회에서 열린 치유상담대학원대학교 총장 취임예배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997년 5월 시카고한인연합장로교회 교인들의 성대한 환송을 받으며 귀국했다. 그런데 뜻밖의 시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교수 임용 1순위로 이사회에 올라갔는데 유력 이사의 조카였던 2순위 후보와 순위가 뒤바뀌고 말았다는 것이다. 나는 ‘배경 없고 돈 없는 사람은 신학대 교수도 못 되는가?’ 하고 또 한 번의 상처를 받고 말았다. 그런데 세상이 얼마나 좁은지, 그 교수의 손위 동서가 내가 한양대를 다닐 때 전도했던 친한 친구이자 공학박사가 된 후 소명을 받고 목회자가 된 최동수 캐나다 밴쿠버 삼성교회 목사였다. 그래서 내 앞길을 막았던 교수를 다 용서하고 화해한 후 지금은 마음의 친구로 삼았다.

내가 교수 후보에서 탈락하자 나를 추천한 정장복 교수님과 오성춘 교수님은 당황하며 내 진로에 대한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사회 이틀 후 새벽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에게 법궤를 찾아오는 사무엘상 6장을 묵상하고 있었다. 그날 황승룡 호남신대 총장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김 박사님, 얼마나 마음이 많이 상하세요. 이런 말씀을 드리면 어떨지 모르지만 꼭 우리 학교에 오셔서 가르쳐 주십시오.” 황 총장님의 간곡한 권유에 나로서는 다른 선택의 길이 없었다. 감사한 마음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유배 가는 심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고향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호남신대는 98년 1월 부임이었기 때문에 그사이 강의할 학교를 찾아야 했다. 오성춘 교수님의 배려로 장신대 대학원에서 6월부터 강의를 시작했다. 그런데 30만원 강사비로는 가족들이 살아갈 수가 없어 미국 풀러신학대학원 목회학박사 과정의 논문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시작했다. 그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당시 한신대 목회상담학과에 계시던 정태기 교수님이셨다.

정 교수님은 한신대 1년 선배이신 이종민 미국 시카고 레익뷰장로교회 목사님으로부터 내 소식을 들으셨다 했다. 나를 꼭 돌봐달라는 이 목사님의 부탁을 받고 곧바로 연락하셨다는 것이다. 한 번 형제이면 영원한 형제처럼 돌봐 주시던 이 목사님의 사랑은 지금 생각해도 눈물 나는 가슴 찡한 감동이었다.

그분의 배려로 97년 3월 설립된 크리스찬치유상담연구원에서 9월부터 수업을 시작했다. 매주 월요일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식사 시간만 빼고 강의에 열정을 쏟았다. 그렇게 시작된 크리스찬치유상담연구원 일반 과정은 그 후에 전문 과정, 인턴 과정으로까지 발전해 학생들만 1500여명에 이르렀다. 2014년에는 교육부에서 치유상담대학원대학교로 인가를 받아 200여명의 대학원(석사 과정) 학생들을 가르치는 치유 상담 전문 교육기관으로 발전했다. 올해부터는 박사 과정을 개설했으며 미국 최고의 상담 대학원인 클레어몬트신학대학원과 공동 상담학 박사 과정까지 열게 됐다.

나는 정 교수님과 함께 지난 24년간 안식년도 없이 강의했다. 그리고 지난해 8월 그분의 뒤를 이어 제3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정 교수님은 내가 가장 어려울 때 큰 사랑을 베풀어 주신, 가장 존경하는 은사 중 한 분이시다.

정리=박용미 기자 m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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